[여의춘추-손수호] 아는 만큼 떠들자
입력 2011-12-01 17:44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축사를 썼다. 석농은 의사 출신 컬렉터였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 볼 줄 알면 모으게 되니 그냥 모으는 것이 아니다”. 시중의 유행어 ‘아는 만큼 보인다’도 여기서 나왔다.
이 글의 핵심은 안다는 것의 의미다. 그림 모으기에 앞서 제대로 알아야 참되게 사랑할 수 있다,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 자체가 헛것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림뿐이랴. 사실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세상사의 바탕이다. 다만 사실과 진실의 차이, 사물의 겉과 속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FTA 둘러싸고 난무하는 거짓
대학 때 유심초의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듣고 친구들에게 뻐긴 일이 있다. 화가 김환기의 그림에서 따온 것이라고. 1970년 공모전 대상을 받은 그 그림을 덕수궁미술관에서 직접 봤기에 한 소리다. 그리고 한참 뒤, 노래와 그림 모두 김광섭의 시 ‘저녁에’가 원전임을 알았다.
수년 전 드라마 ‘하늘이시여’에 노래 ‘울게 하소서’가 나오길래 주변에 영화 ‘파리 넬리’에 나오는 음악이라고 아는 체 했다. 그러다가 2007년 오페라 ‘리날도’가 국내 초연됐는데, 극 후반에 느닷없이 이 노래가 나오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헨델의 1700년대 아리아였다. 안다는 것은 끝이 없고, 배움 앞에서는 늘 겸손해야 하거늘.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마구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제통상은 보통의 식견으로는 알기 어려운 전문 분야다. 협정의 틀을 이루는 수많은 사실 가운데 어떤 것은 우리에게 유리하고, 다른 것은 불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쪽 사실만 들춰내 소리 지른다.
FTA의 방대한 협정문 가운데 개인적 관심사인 저작권 부분을 공부하고 있던 중에 ‘죽은 법도 살린 FTA, 가수 저작권 부활’이라는 기사가 났다. 비준안을 처리할 때 저작권법 개정안도 통과됐는데, 여기에 소멸된 저작인접권을 부활시켜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럴까. 저작인접권은 창작자는 아니지만 가수처럼 저작물의 가치를 높인 사람에게 주어진다. 1987년 법에는 인접권 보호 기간이 20년이었으나 94년 개정 때 50년으로 연장하면서 87년 7월 1일∼94년 6월 30일 사이에 발생한 권리는 20년으로 묶었는데, 이번에 그것을 부당하게 해금시켰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다.
그러나 이 조항은 입법 미비로 남았던 부분을 바로잡은 것이다. 실제로 이선희 김건모 이문세 서태지 등 1980년대 대중음악을 이끌었던 뮤지션들이 피해자다. 1987년 취입한 음반이 20년 지난 2008년에 허락 없이 출시되는 지경에 이르자 가수들이 법 개정을 부탁할 정도였다. 이밖에 인터넷 검색이 일시적 복제에 해당된다거나, 극장 갈 때 캠코더를 지닐 수 없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말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
단순 보도가 이럴진대 신념을 담은 발언이라면 더욱 강고한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고 말한 판사는 “(FTA에 대해) 지식과 전문성이 더 필요해 함부로 글을 쓸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을 정확히 모른채 어떻게 저런 과격한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의문이다.
누구든 고함칠 때는 먼저 사실을 확인하자. 트위터 같은 1인 미디어를 쓰는 사람들은 메시지 내용을 신뢰하는 경우에 한해 리트윗 하자. 옛말이 있지 않은가. 말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고. 그래야 사실이 살아남고 거짓이 소멸되는 SNS의 자정 기능이 살아나 세상의 혼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