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밥그릇·일자리 빼앗나”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反다문화주의자들의 역습
입력 2011-12-01 17:55
하프코리안, 2011년 겨울
다문화시대, 엇갈린 두 시선 100번째 이야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종적으로 단일화된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인은 캐나다, 미국과 같은 다인종 국가를 이상하게 여긴다.”
지난 7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90여명을 사망케 한 극우민족주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가 인터넷에 올린 ‘범행 선언서’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브레이비크가 쓴 내용 중 일부분은 틀렸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현재 141만여명(인구의 2.5%)으로 한국도 단일민족 국가에서 다민족 국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정부는 2005년 사회통합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다문화 정책을 도입했고, 3년 뒤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정부의 친(親)다문화 정책과 달리 일각에서는 반(反)다문화 운동도 조금씩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현재 이런 운동을 하는 단체는 10여곳으로 총 3만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진화하는 反다문화 진영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 “한국 사회에 인종 우월적인 관념이 널리 퍼져 있다. 인종 차별의 정의를 헌법이나 법률에 포함시키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제거하는 관련법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이 같은 해 제정되긴 했지만 외국인 인권 관련 법안은 번번이 반다문화 진영의 반발에 부딪혔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2009년 9월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청문회를 열었으나 끝내 입법안은 발의되지 못했고,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지난 4월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은 한나라당 중점처리 법안 74개 중 하나로 채택됐는데도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김동성 의원실 관계자는 “불법 체류자의 자녀까지 교육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아직은 많은 분들이 법안의 필요성을 공감하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다문화 단체 중 주축으로 꼽히는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외대연대) 박완석(31) 상임대표는 “인종 차별 국가가 아닌데도 불필요한 법을 만들어 외국인과 내국인의 대결 구도를 조장하려 한다. ‘다문화가정’이란 말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불우이웃과 동의어로 인식돼 정부가 각종 시혜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다문화 진영 활동은 가두집회 등의 수준을 넘어 점차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입법 토론회에 참석하거나 정책 제안을 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결혼피해센터 회원들은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지난달 28일 주최한 ‘결혼 이주민의 체류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반대 의사를 적극 표명하기도 했다.
박 상임대표는 “소모성 집회보다 정책 제안 쪽으로 운동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다문화가정의 표를 의식하는 만큼 우리도 유권자 단체를 준비 중이다. 이렇게 되면 외국처럼 우리 생각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도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유럽 국가에선 이주 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들이 상당한 지지를 얻곤 한다. “200만의 이민은 내국인 2000만의 실업”이라는 구호를 내건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지지율은 10%대이고, 무슬림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는 덴마크인민당(DF)도 2007년 총선에서 13.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제노포비아의 전조
2003년 외대연대 결성으로 시작된 반다문화 운동은 2008년 금융위기로 경기가 악화되면서 확산됐다. 이들이 다문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외국인 유입으로 인한 일자리 부족, 국제결혼 부작용, 특혜성 복지 정책 때문이다.
“한국인은 벽돌 쌓기 한 장당 50원, 외국인은 45원 받았는데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한국인 임금도 40원까지 떨어졌다.” 박 상임대표는 형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고 외국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 상임대표의 형은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했고, 한동안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국제결혼피해센터 안재성(50) 대표는 “언론이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 남성은 변태 성행위자나 폭력 남편으로, 결혼 이주 여성은 무조건 피해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7년 국제결혼 정보 업체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여성과 결혼한 안 대표는 아내가 자해를 하면서 한 달도 채 안 돼 별거에 들어갔다. 안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 아내와 지금도 법적으론 부부 사이다.
다문화가정에 제공되는 복지 혜택도 저소득 내국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한다. 이주 여성들도 이런 부분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왕지연(36) 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기업체 등이 제공하는 공짜 교육 프로그램은 매년 겹친다. 탈북자 여성의 경우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면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던데, 이주 여성에게도 ‘선택과 집중형’ 복지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반다문화 진영의 활동이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로 규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어느 사회든 경기 침체기에 반이민, 반다문화주의 정서가 확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정서가 심화될 경우 한국에서도 폭력적인 제노포비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