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부딪히면 칼 꺼내고 한국여성 성추행한다고?… 원곡동 다문화마을특구 3일 夜話
입력 2011-12-01 03:20
국민일보 주말섹션 ‘And’가 어느새 100호 째를 맞았습니다. 2009년 11월 20일 첫 선을 보인 이래 25개월 만입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100번째는 한 가지 테마를 갖고 만들어 봤습니다. 우리 속의 우리, 하프 코리안(Half Korean)들 이야기입니다. 반은 한국인, 반은 이방인인 채로 살고 있는 이주 노동자, 혼혈인, 국제결혼 배우자들에 대한 소문과 실체가 궁금했습니다.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인 안산역에서 ‘위험과 폭력’의 흔적을 찾으려 사흘 밤을 지새웠습니다. And에 소개돼 화제가 됐던 방글라데시 출신 칸 모하매드 아사드 자만과 혼혈 입양인 출신 서마태의 근황은 하프 코리안의 빛과 그늘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이들을 위협하는 반(反)다문화주의자들의 논리도 들어봤습니다. 별도로 100호까지 지켜봐주신 독자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And는 101호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하프코리안, 2011년 겨울
‘설마 위험하겠어?’ 하면서도 내심 조금 걱정됐던 건 사실이다. 혹시 전력으로 도망칠 일이 있을까 싶어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꼈고, 가방도 최대한 단출하게 꾸렸다. 역 출구를 빠져나올 땐 느슨했던 운동화 끈을 발에 꼭 맞게 질끈 맸다.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 안산역에 첫발을 내디뎠다.
중국인과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밀집지인 안산역과 길 건너편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이곳은 ‘길 가다 어깨라도 부딪히면 중국인이 칼을 꺼내고, 동남아 조직폭력배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불법체류자들이 여성들을 추행한다’는 소문이 난 곳이다. 그래서 밤에는 밖을 다닐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포털엔 ‘안산역 위험한가요?’라는 질문에 ‘끔찍한 실체’라는, 정체불명의 기사가 답변으로 붙어있다. 이런 글들은 ‘이주노동자=위험분자’라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우리 사회의 반다문화주의를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어디까지가 뜬소문이고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이곳에서 사흘 밤을 지새운 이야기다. 과연 ‘안산역 3일 야화’는 위험과 폭력으로 가득 찼을까?
안산역의 밤
지난달 26일 토요일 저녁, 안산역 앞 지하보도를 지나 도착한 다문화마을특구의 중심가인 다문화 음식거리. 한국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국적 풍경이 펼쳐진다. 갖가지 외국어 간판을 단 상점가 사이로 국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외국인이 거리를 오간다. 중국어, 러시아어 정도는 알겠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도 많이 들린다.
상점과 노점에선 오리알과 열대과일 두리안, 커다란 중국식 순대와 꽈배기 등 이색 음식이 가득하고, 길거리엔 묘한 음식향도 떠돈다. 진열된 야채들은 꽤 크고, 상당히 싸다. 살아 있는 민물생선의 배를 즉석에서 갈라 내장을 꺼내고 비닐에 싸주는 장면도 보인다.
9시쯤 되자 다문화 음식거리 한가운데 있는 만남의 광장에서 중국인들이 춤판을 벌인다. 트로트 리듬 속에 쌍쌍이 블루스를 추고, 누군가는 막춤을 춘다. 한편에선 장기 대결이 벌어지고 다른 쪽에선 둘러서서 제기를 찬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삶을 즐기는 모습이다.
캄보디아 청년 런문니못(24)은 “원곡동은 재미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천안에서 일하지만 주말엔 자주 이곳을 찾는다. 이곳에는 캄보디아 식당을 포함해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13개 나라 138개의 식당이 있다(일식집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없다). 이들 식당은 향수를 달래주고 공동체 네트워크 역할도 한다.
밤이 깊어가면서 술집마다 사람들이 꽤 들어찬다. 공단은 대개 월급날이 20일이어서 주머니에 여유가 있을 때다. 대부분은 오랜만에 동포를 만나 회포를 푼다.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 외국인 술꾼들의 고향 노랫소리가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채운다. 노래방 네온사인은 가장 늦은 시간까지 번쩍거린다.
일요일인 27일 풍경도 전날과 비슷하다. 그래서 생략.
월요일인 28일 밤은 주말보다 한산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개 몸 쓰는 일을 하다보니 평일에는 늦게까지 밖에 있는 경우가 드물다. 많은 가게가 주말보다 일찍 문을 닫는다. 새벽 3시가 넘자 택시 기사들은 하품을 하며 취객 손님을 기다리고, 넝마주이와 도둑고양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다닌다. 4시가 넘자 버스 정류장에는 첫차를 타고 출근하려는 사람들과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어둠이 점차 옅어졌고, 새로운 일상이 반복됐다.
안산역 3일 야화의 결말은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이다.
원곡동 위험의 실체
시화공단, 반월공단이 있는 안산은 중국과 동남아 출신 노동자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 10월말 기준으로 안산시에 등록된 외국인은 4만4996명. 원곡동 일대 인구는 1만6000명인데 이 중 3분의 2에 가까운 1만명 정도가 외국인이다. 인근 외국인들이 몰리는 주말엔 유동인구가 5만명까지 늘어난다. 원곡동은 70년대 말 내국인 근로자를 위한 공단 배후 주거단지로 개발됐다. 하지만 3D 업종 기피 풍조가 생기면서 공단근로자는 빠르게 외국인으로 대체됐고, 원곡동 주민들 모습도 함께 변했다. 이곳은 한국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다문화구역인 것이다.
외국인 정착 초기에는 국가별 감정적 싸움도 꽤 있었단다. 한국과 중국, 일본인 사이처럼, 동남아 사람들 사이에도 이웃나라 간 묘한 경쟁심이 있다. 민족도, 언어도 다른 이들이 좁은 공간에 모였으니 마찰이 생길 수밖에. 한국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의 분란을 보며 원곡동을 ‘후진국 외국인들이 사는 위험한 동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중국인이 한국인 내연녀를 살해한 안산역 토막살인사건은 위험 이미지를 굳히는 결정타가 됐다. 범인은 잡혔지만, 사건의 후유증은 지금도 여전하다.
위험요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계속돼 왔다. 안산시는 외국인주민센터를 설치해 휴일 없이 11개 외국어 통역을 제공하고 각종 행사를 열며 이주민을 우리 사회에 적응시키려 애썼다. 또 CCTV를 늘리고 특별순찰대를 조직하는 등 치안 강화에 나섰다. 경찰도 캄보디아인과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들을 배치하는 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인주민센터의 박근호(45) 계장은 “안산이 고향이고, 어머니가 여전히 이 동네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위험하지 않아요? “다세대주택인데 세든 중국인들과도 잘 지내십니다. 위험했다면, 어머니께서 벌써 다른 동네로 이사 가셨겠죠.”
상인들 말도 비슷하다. “밤 시간 정말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대로변 김밥집 사장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라고 했다. 2008년부터 장사를 했다는 슈퍼 여주인은 “처음엔 다들 무섭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동남아 사람들은 지내보니 무척 착하더라”고 했다.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여성 부점장은 “밤에 술 취한 사람들 때문에 무서워서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꼭 같이 있는다”고 했다. 술 취한 게 외국인인가요? “아니요. 한국 사람인데요.”
이 동네에선 한번 싸움이 나면 금방 수십명이 모여들기 때문에 패싸움이 벌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를 무시하지 말라’는 과시용 성격이 더 강해 실제 충돌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방글라데시 출신 원곡동 주민 나빅 하산(44)은 “싸워도 같은 나라 사람끼리 싸운다. 그냥 길가는 사람이 칼에 찔릴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원곡다문화파출소에는 주말 40여건, 평일 20여건의 신고가 접수된다. 대부분 합의로 마무리되고 진짜 사건이 되는 건 하루 1∼2건 정도다. 술 마신 뒤 돈내기 싫어서 노래방에서 술 판다고 신고하거나, 사소한 말다툼이 나면 술집주인이 신고하거나 하는 식이다.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힘든가요? “말이 안 통하고 억지를 쓰기도 하니까 힘든 점이 있죠. 그래도 술 취한 한국사람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일부 상인은 곳곳에 중국인들의 사설도박장이 숨어 있고, 중국 마피아인 삼합회 조직원도 있다고 했다. 다만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들었다’, ‘그런 소문이 있다’고 말을 전했다. 경찰은 마작 하는 곳이 도박장으로 와전됐다고 설명했다. 삼합회에 대해서도 “이곳 중국인은 해외에서 고생하며 벌금 2만원도 아까워하는 이들이다. 만약 조폭에게 돈 뜯긴다면 신고 안하고 가만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안산 단원경찰서 심헌규 생활안전과장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 들어 이 지역에서 절도는 30.2%, 5대 강력범죄는 13% 줄었다”고 말했다. 올해 다문화파출소 관할에서 일어난 강도사건은 1건, 강간은 2건이었고 범인은 모두 잡혔다. 지난해 국내 전체 강도 사건은 4409건, 강간은 1만8220건이었다.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법
원곡동에는 전봇대마다 구인광고가 붙어 있다. 그중에는 인근 공단은 물론 충남과 전북, 심지어 전남 해남에서 배추, 무 뽑을 사람 구한다는 내용도 있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공장들 상당수는 외국인근로자들이 있어야 운영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한국 국적의 결혼이주민 2세들이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까만 머리 노란 얼굴’ 국민으로 이뤄진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수밖에. 기본은 이해와 포용이다. 막연한 불안감, 실체 없는 소문들을 근거로 한 이주민 배척은 다문화사회로 가야 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이주민방송 아웅틴툰(35) 대표는 “이주노동자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심을 가져야 한국이 제대로 된 다문화 사회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곳 외국인들은 1960년대 독일로 떠났던 한국의 파독 광부들처럼,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외로운 타향살이를 견디는 이들이다. 돈 많이 벌어 금의환향하는 것이 최종 목표, 말썽 일으켜 강제 출국 당하는 것은 최악의 결말이다. 원곡동에 사무실을 둔 김이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은 “원곡동은 외국인들이 살기 위한 곳, 번 돈을 갖고 와서 생존을 위한 소비를 하는 곳일 뿐”이라며 “위험하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이주민들의 태도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 원곡동은 밤이 깊어가며 매우 지저분해졌다. 거리에 담배꽁초가 수북하고, 가로수마다 쓰레기가 쌓여 있다. 공공장소 흡연은 예사로 한다. 지하보도에도 연기가 자욱할 정도다. 무단횡단 하지 말라는 커다란 중국어 플래카드도 여럿 걸려 있다. 기초질서 위반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킨다. 공존은 한쪽만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안산역의 밤 풍경은 서울 강남역이나 신촌, 부산 서면이나 광주 상무지구 등 여느 번화가와 다르지 않다. 특별히 안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더 위험할 이유도 없는, 그저 사람 사는 곳일 뿐이다. 동시에 이태원이나 서래마을처럼 한국 안의 외국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섭다는 선입견만 없다면 다양한 동남아, 러시아 음식을 즐겁게 맛볼 수 있다. 다만 이곳 외국식당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음식을 낸다. 그러니 “한국사람 입맛에 맞게 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안산=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