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유대인의 식습관
입력 2011-11-30 18:24
몬트리올 대학에 초청 연구원으로 온 지 넉 달 가까이 된다. 아이들이 한 공립학교에 다니는데, 유대인이 얼마나 많은지 돌을 던지면 유대인이 맞을 정도다. 한번은 딸아이가 같은 반의 ‘리앗’이란 유대인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와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물만 먹고 간식은 안 먹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유대인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유대인은 슈퍼에서 사는 물건도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는 것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아무리 친구 집이라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컵, 접시, 포크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찌하면 어린 손님을 대접할까 묘안을 궁리하다 군고구마를 자기 손에 들고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줄까 물었다. 그랬더니 고구마를 굽는 오븐도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유대인 소녀는 공부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갔다. 그 물도 컵에 담은 물이 아니라 페트병에 든 물이었다.
유대인들이 까다롭다 못해 이처럼 지나친 식습관을 만든 것은 필시 부정한 음식을 피하라는 구약의 말씀을 엄격히 지키는 까닭일 것이다. 세속화된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이 이토록 구약의 율법을 세밀하게 적용하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거리에 커다란 유대인 회당이 있고, 아이들 학교 부근에는 아예 유대인만을 위한 학교가 있는 등 유대인들이 많다. 하지만 여태껏 비만에 걸린 유대인을 만나보지 못한 것은 필시 구약에 근거한 그들의 엄격한 식생활 덕분일 것이다.
엊그제 유대인 소녀 리앗이 또 다시 우리 집에 왔다. 이번에는 딸아이와 짧은 동영상을 만드는 숙제를 하루 종일 같이 했다. 지난번에 힘들었던지 점심은 직접 샌드위치를 싸 가지고 와서 먹었다. 무얼 만드는지 둘이 이 옷 저 옷 번갈아 입고서 비디오카메라로 열심히 서로를 촬영했다. 그런데 유대인 소녀가 갖고 온 옷 가운데 금요일날 회당에 갈 때 입는 정장이 있었다. 무릎 밑으로 살짝 내려오는 원피스였다. 그러고 보니 유대인 남자들은 회당에 갈 때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색 정장만을 걸치고 여자들은 치마를 입었던 것이 기억났다. 평일에는 편안하게 옷을 입지만 금요일 저녁 회당에 갈 때만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해진 틀 안에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유대인의 의복 풍속인 것 같다.
구약의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폐하여졌기에 오늘날 유대인들의 의식(衣食) 풍습은 별것이 아니라고 하자. 그럼,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마6:25)는 예수님 말씀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겉모양은 속마음을 드러낸다고 하는 사막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대개 옳다고 할 수 있다. 사막 기독교인들처럼 극단적일 필요도 없고 유대인들처럼 율법적일 필요도 없지만 보다 소박하게 먹고, 보다 단순하게 입는다면 세상은 필시 더 나아질 것이다.
■ 남성현 교수는 고대 기독교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전문가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에서 초대교회사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한영신학대학교 교수와 몬트리올 대학교 초청연구원입니다.
남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