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12월을 맞으며

입력 2011-11-30 18:04


한 해가 저물어갈 때가 되면 이발소와 목욕탕이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아마 이발소와 목욕탕에 앉아 한 해 동안 쌓인 회한과 스트레스의 찌꺼기를 다 털어내려는 심정에서일 것이다. 올해도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이발을 시원하게 하고 사우나에서 온몸의 지친 땀을 마음껏 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올 한 해는 세계사의 일이나 개인이나 우리 사회나 한국 교회에도 참으로 다사다난했고 어려움이 많았던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짓는다는 말로 망년(忘年)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벌써 어느 신문에 실린 학교 동문회의 모임 광고가 ‘깡그리 잊읍시다’였다. 한 해가 얼마나 괴로웠으면 깡그리 잊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자고 할까. 그 심정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동감해 보았다. 우리가 과거를 깡그리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잊으면 모든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것일까?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경험이지만 과거는 잊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한다. 과거를 되새겨 어둡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과거는 과거대로 기억하며, 회고해 보고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반성하며 회개할 것은 솔직하게 반성하며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를 잊은 백성이나 개인에게 주는 역사의 보복은 ‘반복’이라 한다. 우리가 더 이상 생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12월은 망년의 달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는 달, 한 해를 기억하며 돌아보는 달이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망년이라는 표현보다는 송년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를 반성 속에 아낌없이 보내고, 새해를 힘차게 맞자는 것이다.

‘인간은 갈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파스칼의 같은 책에 보면 ‘인간은 오르간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아마 이 말의 뜻은 리듬과 하모니를 갖춘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뜻일 것이다. 인간은 하모니, 곧 조화가 깨지는 경우를 가끔 맞게 된다. 자신이 원하건 원치 않건 다른 사람과의 조화가 깨지는 경우가 있고, 자기 자신과의 조화가 깨지는 경우가 있고, 하나님과의 조화가 깨지는 경우가 있다. ‘죄’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하마르티아’인데 그 뜻은 ‘목표에서 벗어났다’이다. 하늘이 주신 조화의 목표에서 벗어난 것이 곧 ‘죄’라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오르간을 가끔씩 조율해 원음을 회복하듯 우리 인간도 ‘조율’하고 반성하여 삶의 원래 방향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 ‘조율’을 등한시하며 산다. 그리하여 온갖 불협화음이 우리의 내부와 외부에서 들려오게 된다.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 “현대인은 두 개의 병을 갖는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첫째의 병이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둘째의 병이다.”

이제 12월을 맞으며 우리는 빠른 세월 속에 잊고 살았던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되찾고자 결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하늘이 주신 조화의 목표와 생의 목표에서 자꾸만 어긋나 불협화음만 내고 살던 우리 삶의 모습을 다시금 조율하여 하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되겠다.

밭에 김을 매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듯 우리의 마음밭도 내버려두면 악의 잡초가 쉴 새 없이 무성해진다. 종교생활이란, 기도란 이 마음속에 자라나는 악의 잡초를 뽑아내는 작업이라 믿는다. 마음에 자라는 악의 잡초 중 가장 흔한 품종은 오해 미움 시기심이라 말하고 싶다.

아기예수의 오심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대림절 기간이다. 성서는 이 땅에 오시는 아기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하기 위해서는 마음속 악초를 용서라는 제초제로 뽑아내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 마음속의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속의 나, 미움과 증오의 잡초넝쿨에 포로 되어 있는 나를 용서의 이름으로 해방시켜 진정으로 기쁨의 성탄을 맞을 준비를 하는 12월이 되었으면 한다.

■ 정석환 교수는 이야기심리학을 통해 보는 성인 발달과 목회상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