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파푸아뉴기니 문성 선교사] (7) 하나님은 언제나 가르치시기를 원하신다
입력 2011-11-30 18:00
선교지마다 생필품·치료비 채워주신 하나님…
‘사도 바울처럼 살리라’고 다짐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주권자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셨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모아 놓으면 다음달엔 그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겼다. 계획을 세우며 살 수가 없었다. 가계부를 작성하고 규모 있고 계획성 있게 생활을 하는 것이 바른 것이라고 배웠던 우리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특히 부족한 돈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말과 생각으로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하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호주에서 4년간 훈련을 받는 동안 우리를 포함한 모든 선교사 훈련생들은 한 슈퍼마켓의 도움으로 살았다. 유효기간이 지난 모든 물품과 음식이 선교센터에 들어왔고 빵가게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빵을 더 만들어 선교센터로 보냈다. 농장에서는 비바람에 떨어진 과일을 보내주었다.
작은아들 성훈은 참치를 좋아했는데 감사하고 신기한 일은 매주 음식을 가지러 갈 때마다 참치 깡통이 들어와 있었다. 유효기간 날짜를 보니 아직 남아 있었는데 깡통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상점에서 누군가가 깡통을 떨어뜨려서 팔리지 않은 것이 들어온 것이었다. 성훈은 “언제나 신실한 성도를 통해 참치를 진열대에서 떨어뜨리는 주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했다.
가족의 필요를 채우겠다며 과일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과일 따는 일을 시키고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청년과 함께 말똥을 치우는 일과 섭씨 35도가 넘는 무더위에 비닐옷을 입고 농약을 뿌리는 일, 개간을 위해 돌을 치우는 일을 시켰다. 2주가 지나자 몸이 따라가지 못해 병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한국을 떠날 때 큰아이는 중학교 1학년,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큰아들 성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아버지, 외국에 가면 은행에 돈이 있어요?” “외국에는 아버지 돈이 없단다.” “외국에서 컴퓨터 일을 하실 건가요?” “아니, 아빠는 다시는 돈을 벌지 않을 거란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학교를 다니지요?”
한참을 생각하다 “아빠가 너희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하나님은 더 잘 알고 계시단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연했다. 이 말을 듣던 성민은 얼굴을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럼 누가 우리 신발을 사주지요?”
1992년은 마이클 조던의 신발이 아이들에게 우상과 같았다. 나는 아무 답을 하지 못했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무엇을 취하려 함이 아니라 나누려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응답하옵소서”라며 기도했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 날 성민이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보험회사로부터 청구서가 날아왔다.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런데 1주일 전 목사님 한 분이 사모님과 함께 기숙사를 찾아 와 “그동안 아내가 재봉일을 하여 공부를 했는데 공부가 끝나면서 재봉틀을 팔아 기도하던 중 선교사님 생각이 나서 찾아 왔습니다. 선교헌금으로 사용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나중에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한 뒤 선교헌금을 다른 목적에 사용해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목사님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응답되는 곳에 쓰임 받음을 감사합니다. 필요하신 대로 사용하십시오”하며 말했다.
봉투를 열어보고 금액을 세어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돈을 책상에 던지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예전에도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이번은 달랐다. 청구금액과 동일한 금액이 들어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마음을 언제나 감찰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두려워 소름이 끼쳤다.
내 마음과 생각이라고 얼마나 마음대로 했던가. 성경을 읽을 때도 눈으로만 읽었고 기도할 때도 입으로는 기도하면서 마음과 생각은 다른 것을 행하는 죄인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양심이 전부 드러나 피할 길이 없었다. 매일 해와 달을 만나며 숨을 쉬고, 자연과 함께 삶을 영위하며 미래의 계획과 소망을 생각하면서도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손길인지 모르는 우둔한 죄인이었다.
주님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간섭하고 인도하고 계시며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깊게 알게 됐다. 주님의 임재를 가슴 가득히 안고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죄를 자복했다. 그날 이후 묵상과 기도 시간이 늘어났다.
선교사가 무슨 신용카드를 사용하겠느냐며 신용카드를 버렸던 일, 내 물건이란 생각으로 남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 얼마나 교만이며 자기만족 행위인지를 깨닫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려놓은 것이 없고 내려놓을 능력도 없는데, 무가치한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다고 자만하며 내 의지와 생각대로 행했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우리 가족을 돌봐 주십시오! 아비로서 자식과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지난 18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감찰하셨다. 십자가의 주님을 알게 하셨고 십자가 은혜를 알게 하셨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 사랑과 긍휼, 은혜가 무엇인지도 알게 하셨다. 물질이 너무 부족해 넘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너무 많아 교만하게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 필요를 미리 아시고 일용할 양식을 채우셨다. 오직 영광과 존귀를 받기를 원하시는 주님, 그는 긍휼로 눈동자처럼 돌보고 계셨다.
때때로 교회에서 우리 가족을 소개할 때 ‘죽을 각오를 가지고 파푸아뉴기니 정글로 가신 선교사를 소개합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죽을 각오와 신념으로는 주의 일을 할 수가 없다. 죄인의 의지와 신념과 전통과 신비주의 속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이 삶에 응답된 성도만이 주의 일을 할 수 있다. 아니 선한 게 없는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능력이 없다. 오직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주의 일에 도구가 되어 참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누리는 기쁨과 감격을 알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참된 인격으로 성숙하게 된다. 예수 십자가의 피와 함께 죽은 자만이 누리는 참된 즐거움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 문성 선교사
문성(60) 선교사는 아내 이민아 선교사와 함께 20년째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하고 있다. 지병 박리성대동맥류 때문에 인공동맥을 차고 있다. 선교지 코라 부족은 식인을 할 정도로 원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