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裸力

입력 2011-11-30 17:42

겨울 초입이다. 겨울에 나무들은 이파리도 없이 홀로 맨몸으로 버틴다. 이파리가 없으니 광합성도 제대로 못한다. 엄동설한을 몸 하나로 버틴다. 이 혹한을 버텨야 새 봄을 맞는다. 죽지만 않으면 봄의 햇빛을 받아 다시 활기차게 살 수 있다. 그야말로 나목(裸木)이다.

이 같은 겨울나무의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사람이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경(1809∼1892)이다. 그의 저택 앞에는 큰 오크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테니슨은 이 거목을 통해 인생을 시로 읊었다. 오크는 참나무로 변역되지만 우리 참나무보다는 더 크고 모습도 약간 다르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오크나무의 겨울 모습을 인생의 노년기(60대 이후)에 비유하면서 오크나무가 잎을 다 벗지만 적나라(赤裸裸)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예찬한다.

적나라한 힘, 다시 말해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은 뒤에도 남아 있는 힘을 나력(裸力·naked strength)이라고 한다. 그의 시 ‘오크나무’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오크나무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한결같이 늠름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우리 인생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시의 주제다.

이 나력을 경영학과 인생철학에 비유해 설명한 사람이 바로 경영학의 대가로 불리는 윤석철 교수다. 그는 저서 ‘삶의 정도(正道)’에서 테니슨의 시를 통해 ‘나력’의 개념을 소개하며 권력을 휘두르던 정치가가 권력이라는 옷을 벗은 뒤, 즉 직책을 그만둔 뒤에도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나력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학교수가 정년퇴임 후에도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계속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역시 나력이 있다고 규정한다.

우리 주변에는 권력의 위세를 등에 업고 무리한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이 꽤 많다. 한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가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다 아무런 설명 없이 돌변해 거리로 나간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상실감에 편승해 정치권을 희화화시키며 자기만족적 괴담을 퍼뜨리는 무리들도 적지 않다.

자신이 그 직을 떠나서도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처신하는 것이 나력을 높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량한 권위나 약간의 인기에 집착해 앞뒤 생각 없이 행동한 사람들은 나력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인생의 노년기에 존경을 받고 싶다면 지금 그 자리에 있을 때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