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 시네마-50/50] 겨우 반밖에… 아직도 반이나…

입력 2011-11-30 18:03


“현실을 바꿀 순 없어요.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곤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을 어떻게 선택하느냐 일 뿐이에요.” 아담은 이제 갓 그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즈음에 이름마저도 생소한 말초신경초종양이라는 척추암에 걸린다. 살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다. 인생은 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그러나 카지노에서 이길 확률보다 높다고 해서 내 의지로 삶을 선택할 순 없다. 마치 불행한 운명은 느닷없는 사고로 위장해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인생은 누구나 원하는 것처럼 평온하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안 된다. 그의 옆에는 반드시 아내나 여자 친구, 그리고 진실한 친구와 내 얘기를 들어줄 상담가가 필요하다. 피곤하게 만드는 엄마는 빼고. 내 주변의 현실은 내가 정상일 때와 아픈 지금은 다르다. 더군다나 죽음에 맞서는 법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조나단 레빈 감독은 이 이야기를 우울한 투병기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 어른의 성장기로 풀어낸다. 아담을 사랑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 친구 레이첼과 아담의 단짝 카일, 아들을 끊임없이 간섭하고 걱정해주는 엄마와 책으로만 상담을 배운 초보 상담치료사 캐서린과 같은 캐릭터들은 아담이 긍정의 길로 향하도록 안내한다. 특히 아담과 카일 역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과 세스 로건은 날 때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미국 TV 시트콤 ‘솔로몬가족은 외계인’에서 막내 ‘톰’역으로 10대 사춘기를 보낸 조셉 고든 레빗은 ‘잘 자라서 고마운’ 배우로 성장했다. 그는 ‘500일의 섬머’에서는 ‘휴 그랜트’를 이을 차세대 로맨틱 가이 이미지를 각인시키더니 ‘인셉션’에서 냉철한 설계사로, 다시 1년 만에 소심한 듯 순수한 미소가 아름다운 훈남 ‘50/50’의 아담으로 돌아왔다. 또한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의 팬더 목소리 연기와 ‘그린 호넷’으로 잘 알려진 세스 로건은 특유의 중저음 바리톤 목소리와 엉뚱한 듯한 코믹 연기로 로맨틱 코미디에 유쾌한 감초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더군다나 시나리오 작가 윌 레이저 자신이 겪은 실제 이야기가 ‘50/50’이라는 부분과, 그를 긍정의 밝은 길로 이끈 실제 친구가 바로 카일 역의 세스 로건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암 환자 동료가 건네준 이상한 풀이 들어간 쿠키를 먹고 치료실에서 빠져나와 복도를 걸어가는 웃음 가득한 아담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장면은 모순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벽면에는 가족들의 손을 잡고 피크닉을 가는 어린이가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위에는 ‘가족과 함께 암을 이겨내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러나 병원 복도에서 마주치는 현실의 사람들은 암 환자거나 그들의 가족이다. 절망 속에서 울고 있고 주검처럼 보이는 형체가 응급 카트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모든 광경들이 웃음을 머금은 아담에게는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가지만 그가 대면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와중에 풋내기 상담치료사 캐서린은 아담을 위로한답시고 여전히 어설픈 스킨십을 시도한다. 그녀는 책에서 배운 대로 아담의 팔을 터치하는 것이 환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에게 캐서린의 그런 행위는 위로가 아니라 뭔가 찜찜한 기분 나쁨일 뿐이다. 터치가 교감으로 와 닿기 시작한 때는 캐서린이 아담을 집에 바래다주는 차 안에서 환자와 치료사로서가 아닌 아담과 캐서린으로서 서로의 마음을 처음으로 열고 난 후부터이다. 조나단 레빈 감독은 암 환자라는 현실을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교감, 즉 사랑이라고 말한다. 고난 극복 휴먼 드라마와 다르게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플롯을 차용함으로써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은 웃음과 감동의 눈물을 선사한다.

조현기(서울기독교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