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사모의 땅끝 일기] 감사
입력 2011-11-30 18:02
“…죽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 우리 누나 이빨 고쳐주셔서 감사, 교회에서 살게 해주셔서 감사, 식물이 죽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화장실 고장 안 나게 해주셔서 감사, 나무들이 부러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양말에 구멍이 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맛있는 거 먹게 해주셔서 감사, 핸드폰 부서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문 깨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전기 나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컴퓨터 부서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대영/남/8세)
“…워십을 처음으로 한 것, 좋은 나라에서 사는 것….”(성민/남/11세)
“…아침 점심 저녁 매일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전쟁이 안 나게 해주신 것, 손가락이 10개인 것….”(예지/여/13세)
“…주님을 믿게 해주신 것, 밥을 굶지 않고 배불리 먹게 해주신 것…. (태민/남/14세) …지진이 안 나서 감사, 집에서 안 살게 해주셔서 감사….”(서희/여/14세)…
이상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우리 가족이 금요일 저녁 큐티 시간에 함께 모여 올 한 해 감사한 것들을 적어 서로 나눈 글들 중 일부랍니다. 이 외에도 엄마가 계신 것, 이영훈 목사님 만난 것,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것, 태어나게 해주신 것, 서울 구경한 것 등 등….
제가 평소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아이들의 감사 글을 읽는 제 마음은 감사와 또 아이들의 감사를 기뻐 받으시는 성령님의 감동이 가득 차고 넘쳐흘렀습니다.
사실 전 손가락이 열개인 것에 대해, 그리고 전쟁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리 감사의 기도를 올려본 적이 없거든요.
학교에서 조선 역사를 배울 때 가슴이 너무 아파 집에 돌아와 울먹이며 “우리나라가 너무 불쌍해요”하고 저를 감동시킨 예지는 역시나 감사의 글로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감사했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집으로 보내져 2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하다가 우리 집으로 오면서 용기를 내 중학교 1학년에 다시 다니며 한국사를 정말 즐겁게 배우며 새로운 세상을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는 예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정말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대영이는 서희 동생인데 늘 가정폭력으로 집안과 밖의 대부분이 부서지고 깨져 마음조차 상처가 많았는데도 감사한 것이 너무나 많아 서로 나누는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부러진 누나의 치아 치료가 잘 되어 앞니가 생긴 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초등학교 1학년 맑고 깨끗한 심령이 그대로 감사의 글에 옮겨져 아마도 감사의 글을 읽는 우리 주님도 무척이나 대견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주님이 주시되 풍성히 주신 올 한 해를 뒤돌아봅니다. 필요할 때마다 넘치도록, 많은 우리 아이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풍성히 주시고 밖에 나가서 기죽지 않도록 삶의 모든 부분을 배려하시고 돌아보시며 가득 채우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침에 눈 떠 숨쉴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재잘대며 떠드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소리에 감사드립니다. 늘 저의 품을 파고들며 안아 달라고 떼쓰는 민철이부터, 학교만 가면 머리가 아픈 말썽쟁이 혜지까지 우리 아이들 모두 감사하지 않는 아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웃고 떠들며 또 함께 울기도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이젠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이 누구였던가∼, 이 아이들 모두가 다 저의 가슴속 제 자식이 되어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가 만들어져감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저는 행복한 하루를 만드는 감사한 동네 감사한 집에 감사한 엄마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혜원 사모는
남편 배요섭 목사(전남 해남 땅끝마을 아름다운교회)만 보고 서울에서 땅끝마을 송호리로 시집왔다가 땅끝 아이들의 ‘대모’가 돼 버렸다. 교회가 운영하는 땅끝지역아동센터 아이들 50여명의 엄마로 오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