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루이 9단을 보내며

입력 2011-11-30 17:42


‘철녀’ ‘마녀’ 등 강인함이 느껴지는 별명을 가진 그녀의 첫 모습은 의외였다. 작은 체구의 하얀 피부, 얼굴을 반쯤 가린 동그랗고 큰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는 날카로운 승부사의 눈빛과는 달랐다. 시력 교정을 하고 안경을 벗었을 때에도 차가움보다는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성격 또한 상냥하고 부드럽다. 유머도 있어 같이 모여 연구를 할 때면 가끔 좌중을 웃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바둑은 항상 치열하다. 뭔가에 잔뜩 화나 있는 사람처럼, 나와 끊을 수 있는 자리는 모조리 끊어버린다. 이기든 지든 승부는 늘 불계로 끝나버린다. 바둑은 두는 사람의 성격과 기풍이 잘 드러나는데 그녀는 정반대 느낌이다. 바둑을 떠나 그녀의 삶 또한 평범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좇아 고향을 떠나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각지를 떠돌아 다녔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바둑을 두지 못 한 채 10년 넘게 유랑생활을 했다.

바둑이 두고 싶어 일본기원에 요청도 해봤지만 보수적인 일본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한국까지 오게 됐다. 1999년 당시 한국 여자바둑은 일본 중국에 밀려 최약체였고 인원도 많지 않았다. 남자를 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바둑은 강해지고자 세계여자최강이었던 그녀를 받아들였다.

다시 승부를 할 수 있게 된 그녀는 그동안의 한을 쏟아내듯 2000년 제43기 국수전에서 조훈현 9단을 꺾고 여자기사 최초로 메이저기전 우승을 차지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여류기전에서는 27회나 우승을 차지했고, 2003년에는 입신최강전에서 부부가 결승전을 펼치는 기록까지 세웠다. 그녀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꿈을 보여주었다. 그녀를 따라 한국 여자바둑은 성장했고 세계대회 개인전 6회와 단체전 4회 우승, 그리고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석권하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바둑에 대한 열정이었다. ‘바둑만 둘 수 있다면 그곳이 지상낙원’이라는 그녀의 하루는 온통 바둑뿐이었다. 아침이면 남편과 나란히 걸어서 기원으로 나와 시합을 구경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연구를 하고, 마칠 시간이 되면 또 부부가 나란히 집으로 향한다. 세상에는 온통 바둑만이 존재한다는 것처럼 부부의 시선은 한곳으로 고정돼 있다.

12년 8개월. 한국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부부는 모국으로 돌아간다. 긴 방랑생활을 접고 그리웠던 고향에서 새로운 승부를 시작하려 한다. 이제는 가까이에서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어디에 있든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을 것이다. 바둑 안에 살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루이나이웨이 9단과 장주주 9단의 삶이 벌써 눈에 보이듯 훤하게 그려진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