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초기詩 ‘그것을 위하여는’ 발굴 공개… 계간 문예지 ‘문학의 오늘’ 게재
입력 2011-11-29 19:43
작고 시인 김수영(1921∼1968·맨 위 사진)의 초기 시가 발굴 공개됐다. 서울 황학동에서 둥지컬렉션을 운영하고 있는 고서수집가 문승묵(56)씨는 김수영의 시 ‘그것을 위하여는’을 연합신문 1953년 10월 3일자에서 발굴, 12월 초 창간 예정인 계간 문예지 ‘문학의 오늘’에 공개했다.
59행 12연으로 구성된 ‘그것을 위하여는’은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한 후 체포돼 거제도포로수용소에 갇히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김수영의 내면과 시적 지향이 밀도 있게 드러나 있다. “실낱같이 잘디잔 버드나무가/ 지붕 위 산 밑으로 보이는 객사(客舍)에서/ 등잔을 등에 지고 누우니/ 무엇을 또 생각하여야 할 것이냐// 나이는 늙을수록 생각만이 쌓이는 듯/ 그렇지 않으면 며칠 만에 한가한 시간을/ 얻은 것이 고마워서 그러는지/ 나는 조울히 드러누워/ 하나 원시적인 일로 흘러가는 마음을 자찬하고 싶다”(1∼2연)
시의 화자는 버드나무가 산 밑으로 보이는 ‘객사(客舍)’에 등잔을 등에 지고 누워 있다. ‘객사’란 나그네를 치거나 묵게 하는 집이다. 시를 발표할 당시 김수영은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시인 박태진의 주선으로 부산 미8군 통역으로 취직했지만 곧 그만두고 모교인 부산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잠시 근무하고 있었다. ‘객사’란 아마도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묵었던 집으로 추측된다.
‘원시적’이라는 표현은 이처럼 실존적 고난의 연속이었던 당대를 살아간 김수영의 내적 지향성을 드러내 보인다. “불같은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밤만은 그러한 소리가 귀에 젖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이 있다면/ 아니 저 등불이라도 마시라면/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3연)
3연에서는 ‘원시적인 일’로 흘러가는 마음을 가진 화자에게 ‘불같은 세상’이라는 말도 곧이들리지 않는다. ‘불’은 시인에게 원시를 앗아가 버린 전쟁과 현대문명을 상징하고 있다.
4연은 “상인을 업수이 여기는 나의 마음도/ 사실은 오지 않을 기적을 기다리는/ 영원의 상인(商人)”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김수영이 돈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 ‘원시적인 일’을 꿈꾸는 사람, 즉 시를 생각하고 있음을 유추케 한다. 이 시에서 압권은 “나이를 먹으면 설움을 어떻게 발산할 것인가도 자연히 알아지는 것인가 보다”라는 6연과 “그것을 위하여는/ 일부러 바보라도 되어보고 싶구나”라는 마지막 12연이다.
최하림 시인의 ‘김수영 평전’에 따르면 김수영이 53년 12월부터 다음해 12월 사이에 쓴 9편의 시에 ‘설움’이라는 단어가 무려 15번이나 등장하고 있다. 이 시에도 역시 ‘설움’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이번에 발굴된 시는 전후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생활에 어렵게 착근해 가던 김수영의 실존적 기갈이 반영돼 있다”며 “김수영 초기작 가운데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읽혀질 시편이자 문제작”이라고 평가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