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출범 회오리] 신문 등에 업은 공룡, 광고사냥 땐 미디어 생태계 파괴
입력 2011-11-29 15:00
종합편성채널(TV조선·JTBC·채널A·MBN) 4개와 보도전문채널(뉴스Y)이 1일 동시 개국함에 따라 미디어업계 지각변동이 현실로 다가왔다. 영향력이 큰 새로운 매체들이 무더기로 진입하면서 방송시장은 물론 미디어업계 전체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채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시각도 있지만 특혜로 중무장한 종편들이 과당경쟁을 주도해 미디어 생태계를 병들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별로 새롭지 않은 거대 공룡의 등장=종편은 뉴스 보도를 비롯해 드라마 교양 오락 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편성해 방송하는, 말 그대로 종합편성채널이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를 통해 시청해야 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KBS, MBC, SBS 등 지상파와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종편 4개 채널의 등장은 사실상 지상파 4개가 생긴 것과 마찬가지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채널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다. 채널 간 경쟁 심화가 양질의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프로그램 질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은 시청률 지상주의를 더욱 부채질하고 결국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과거 민영방송인 SBS가 출범할 때도 공영방송까지 광고 경쟁에 휘말리면서 프로그램의 선정성 경쟁이 심화됐었다.
박영선 언론개혁연대 대외협력국장은 “현재 종편은 지상파 편성을 그대로 베끼고 있는 수준이다. 채널이 늘었지만 시청자들의 볼거리가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미디어광고시장 파행 초래=종편의 등장은 무엇보다도 미디어광고시장에 재앙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이 새로운 광고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광고업계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소위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과 매일경제 등 대형 신문을 등에 업은 종편들이 제한된 규모의 광고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들어가면서 기존 매체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광고주협회 홍헌표 조사본부장은 “전체 광고가 늘어나기보다는 방송시장 광고를 놓고 종편과 기존 매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종편들이 모회사인 신문사의 영향력을 이용해 끼워팔기, 신문과 방송광고 연계판매 등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종교·지역방송 위축…여론 다양성 훼손 우려=종편의 기존 광고시장 잠식은 자연히 지역·종교방송과 중소 신문사 등의 광고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법안 미비로 종편은 물론 SBS, MBC 등 지상파까지 광고 직접영업에 뛰어들 태세여서 자생력이 부족한 지역·종교 방송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과 중소·종교방송들은 그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연계판매제도(수도권 지상파 프로그램과 자사 프로그램을 연계해 광고를 판매하는 제도) 덕을 봤지만 앞으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편의 무더기 개국은 여론의 쏠림현상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지역·종교방송은 물론 중소 신문사들의 위축은 소수자와 약자, 지역주민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통로가 좁아지는 걸 의미한다”며 “종편의 등장으로 방송은 친정부적이고,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인 경향이 더 강화되고 그만큼 여론의 다양성은 훼손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박지훈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