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캘퍼 특혜’ 증권사 대표 무죄… 시장교란 혐의 대신증권 임원 첫 재판

입력 2011-11-28 21:31

주식워런트증권(ELW)의 초단타매매자(스캘퍼)에게 전용회선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증권사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개인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시장을 교란한 증권사와 스캘퍼의 검은 공생관계를 파헤치겠다며 증권사 대표 등을 무더기로 기소했던 사건의 첫 선고에서 법원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ELW 사건은 한상대 검찰총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증권가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치켜세웠던 사건이다. 검찰은 즉각 항소키로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는 28일 ELW 거래 과정에서 스캘퍼에게 일반투자자보다 3∼8배 빠르게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대신증권 노정남 사장과 김병철 전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개인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LW는 미래의 특정 시점에 개별 주식 등을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표시한 유가증권으로 거래 속도가 투자의 성패를 좌우한다. 선물 옵션과 달리 일반 주식계좌에서 소액 거래가 가능해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조6000억원을 넘길 정도로 급성장했다. 스캘퍼는 몇 분 새 주문을 쏟아내 단기차익을, 증권사는 거래수수료를 챙겼다는 게 검찰의 공소 내용이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스캘퍼와 개인투자자의 주문 물량이 충돌하는 게 0.008%뿐이고, 스캘퍼에게 제공한 전용회선 서비스는 기관·외국인 투자자에게도 똑같이 주어져 특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ELW 주문에서 속도차가 있지만 이를 막으라는 법령도 없고,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ELW 시장 자체가 초고수익 위험 상품이고 만기 도래일까지 수익이 계속 줄어들어 개인투자자에겐 구조적으로 불리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ELW 시장에서 개인투자자가 손해를 본다면 형사처벌이 아닌 금융 당국이 정책적 행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검찰은 지난 6월 대신증권을 비롯해 국내 12개 증권사 전·현직 대표와 임직원, 스캘퍼 등 48명을 기소해 서울중앙지법 4개 형사부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데 스캘퍼에 대한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ELW 관련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쟁점을 잘못 파악했다. 피해자 부분을 부각시켰는데 도외시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 고위 관계자는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며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얻어 스캘퍼에게 전용회선을 제공한 것이었는데 (검찰 기소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검찰 기소를 전후해 ELW 거래가 줄어 걱정했던 한국거래소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우성규 이경원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