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예산 증액·부자 증세·비정규직 구제… ‘복지’ 내세워 살길 찾는 한나라
입력 2011-11-28 11:05
[뉴스포커스] 2012년 총선 위기감… 청와대 압박
한나라당이 복지확대의 기치를 내걸고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이 팽배해진 여당이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정책을 쏟아내며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에 빠진 청와대를 압박하는 양상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주에 여권 전체의 행로를 결정지을 중요한 두 가지 정치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후폭풍 등 초라한 ‘민심 성적표’를 받아든 상황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서다.
우선 29일 열릴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 쇄신 연찬회에서는 ‘MB와의 차별화’를 골자로 하는 정책전환에 대한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전망이다. 특히 친박근혜계와 쇄신파가 연대해서 추진하는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과 보육, 일자리 등 민생예산 3조원 증액이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은 사실상 부자증세로 현 정부의 감세를 통한 성장 정책기조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세 표준 2억원을 넘는 4만4100여명(2009년 소득기준)에게 40%의 소득세 최고세율을 매길 경우 2012년에만 34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히고 2016년부터는 2조원 이상이 더 걷힌다는 것이다. 늘어난 세수는 민생예산으로 돌려 복지정책을 확대한다는 ‘증세+복지 패키지 전략’인 셈이다.
연찬회가 끝난 뒤 열릴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는 정부와 청와대의 반발이 예상된다. 하지만 결국 총선, 대선을 치러야 하는 당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대표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민생예산 증액과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교체를 당이 주도하겠다”며 사실상 박 장관 경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박 장관은 부자증세와 예산증액에 부정적이다. 그리고 28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직후에는 “재정 건전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예산을 재조정하고, 시대변화에 맞춰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은 필요하다고 (이 대통령과) 의논이 됐다”고 김기현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 이 대통령이 홍 대표의 요청에 공감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당 정책위도 발 맞춰 이날 당정협의를 갖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34만1000여명 가운데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 9만7000여명을 사실상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친서민 정책’을 정부와 합의해 발표했다.
청와대는 일단 신중하게 반응했다. 우선 연찬회에서 당내 의견이 모아지고 추후에 당정협의, 부처간 조율을 거쳐야 하는 만큼 지금은 청와대가 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홍 대표와의 회동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은 (정책에) 감정적 접근을 하고 있다. 청와대·정부의 입장과는 간극이 있다”며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여권 유력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정책기조 전환을 요구하고 있고 홍 대표도 보조를 맞추고 나선 만큼 이번 주가 지나면 한나라당이 당·정·청 내 역학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현 정권과의 차별화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유성열 태원준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