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케케묵은 레퍼토리로는 쇄신 못한다

입력 2011-11-28 18:05


한나라당은 2004년에도 당명 개정을 추진했었다. 2002년 대선 자금 불법 모금으로 ‘차떼기 당’이란 오명을 쓰게 된 데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으로 치명상을 입어 창당 수준의 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때였다. 국민공모까지 실시한 결과 ‘선진한국당’ ‘새나라당’ ‘한마음당’ 등이 새 당명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개명은 무산됐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거센 ‘탄핵 역풍’ 속에서도 ‘거여 견제론’으로 민심을 설득해 121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7년 대선에서는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96년 2월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사고가 잇따르고 개혁 피로감이 확산되면서 95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의 조순 후보가 당선되는 등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기 때문이었다. 당명 개정과 함께 현역 의원들을 대거 물갈이하고 야권 인사들을 영입, 이듬해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신한국당은 대선을 목전에 둔 97년 11월 통합민주당을 합쳐 한나라당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회창 후보가 패배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당명·당헌 개정은 낡은 방책

당명 변경은 지지율이 급락한 정당이 지도부 교체에 이어 자주 동원하는 방책이다. 동시에 당헌이나 당 강령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민심이반과 제3의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적 희구 등에 밀려 선거에 잇따라 패배한 한나라당에서도 쇄신 목소리가 높다. 창당 수준의 쇄신, 당명 개정 불사, 40% 수준의 현역 물갈이 공천 불사 등의 구호가 당 지도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29일에는 쇄신을 위한 연찬회가 열릴 예정이다.

문제는 당명 개정 같은 묵은 레퍼토리만으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적 쇄신이나 당 체질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무늬만 새 당’ ‘신장개업’이라는 비판을 듣게 된다. 코앞에 다가온 선거전은 어찌어찌 넘길 수도 있겠지만 결국 ‘변한 게 뭐냐’는 더 따가운 비판, 더 깊은 불신이 되돌아온다. 정치권력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쇄신의 진정성과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2004년 한나라당은 포용적 대북관계 등을 골자로 당헌·강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개정·폐지 국면에서 금방 한계를 드러냈다. 당내 보수파의 반발을 등에 업고 강력한 대여 투쟁을 벌인 결과 보안법은 한 자도 건드리지 못하게 막았지만 ‘수구 꼴통’이라는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 그럴 거면 당초 왜 당헌을 바꿨느냐는 비난과 함께 애초 진정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개혁 공천은 선거 캐치프레이즈 같은 당명 개정이나 당헌 개정보다는 파급력이 크다. 현역을 대거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는 공천을 단행하면 새로운 조직처럼 보인다. 물갈이에 수반되는 조직의 아픔이 크면 큰 만큼 유권자들은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조건은 아니다. 비리 연루자는 공천에서 일체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공표해 놓고는, 물의 빚은 동료 의원을 징계하지 못한 채 싸고돌기만 한다면 지속성과 일관성이 의심받게 된다.

진정성 있는 체질변화 필요

쇄신의 진정성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영입한 젊은 피들이 당, 국회, 지역구에서 소신 있게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한다. 정체성 결사 사수보다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들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온정적 보수’라는 기치 아래 13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같은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다. 그래야만 한나라당도 그저 국민들의 눈치만 보는 정당이 아니라 진전된 새 이념을 통해 선제적으로 민심을 쟁취하는 살아있는 보수 정당이라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