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철환] 책 안 읽는 사회
입력 2011-11-28 17:45
“제한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독서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대안”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지하철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이들을 간간히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책 대신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굳이 책을 통하지 않고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독서력은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요지표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높이를 갖고 싶어 한다. 높이를 갖고 싶다면 먼저 깊이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깊이를 갖는다면 높이는 저절로 만들어질 것 같다. 깊이를 갖는다는 건 자신의 가능성을 긍정하며 어둠의 시간을 견디겠다는 뜻일 테고, 깊이를 갖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독서다.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게 ‘외모’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말’이라고 한다. 그의 말이 행동과 일치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겠지만, 행동까지 낱낱이 살필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 외에는 거의 없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가 그를 말하기도 하지만 직업은 그의 수입이나 지위를 가늠할 수 있을 뿐, 직업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할 때가 많으니 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독서는 말하기 능력을 길러준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말 속에 진심을 담을 수 있는 힘도 얻을 수 있다.
간혹, 책이 밥 먹여 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쩌면 그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읽은 책들
이 다리 하나나 두 개를 건너면 밥도 되고 떡도 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사과나무를 기르지 않고도 사과를 먹을 수 있고 쌀농사를 짓지 않고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독서를 통해 얻은 사유는 삶에 대한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독서로 얻은 사유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꿈꾸는지를 알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독서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성찰을 주기도 한다. 독서는 우리의 열등감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치료약이 돼주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 침묵의 독백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 감명 깊게 읽은 희곡집이 있다. 책 속의 주인공 쇼팔로비치는 유랑극단을 이끌고 지방 순회공연을 다닌다. 그 당시 그 나라의 민중들 대부분은 몹시 가난했다. 유랑극단을 이끌고 다니는 쇼팔로비치를 향해 한 여인이,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밥도 될 수 없는 그까짓 유랑극단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따져 묻는다. 쇼팔로비치는 우리가 하고 있는 유랑극이 밥이 될 순 없지만, 왜 밥을 먹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 주고 싶은 거라고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독서의 필요성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많겠지만,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첫 번째로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수없이 맞닥뜨리는 복잡한 삶의 상황 속에서 상황을 명민하게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로는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똑같은 말을 해도 설득력 있는 말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이 세 가지 힘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것은 경험일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시간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독서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대안이다. 독서를 통해 얻은 간접경험으로도 우리는 나를 설명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철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