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제3의 세력
입력 2011-11-28 17:46
숫자 3은 조화 혹은 완결된 전체를 의미한다. 2가 양가성(兩價性)으로 특징지어지는 미해결상태를 나타낸다면 3은 그것을 아우르고 종결하는, 곧 조화롭게 완성시키는 숫자다. 적어도 독일의 상징학자 오토 베츠에 따르면 그렇다(‘숫자의 비밀’).
물론 한 발 뚝 떨어져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들에 3이라는 숫자를 붙이기도 한다. 가령 당사자가 아닌 사람을 가리킬 때 ‘제3자’라고 하고, 이쪽 편도 저쪽 진영도 아닌 나라들을 ‘제3세계’라고 일컫는다. 그런가 하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농업의 발명과 산업혁명에 이은 현대 고도 과학기술문명을 ‘제3의 물결’로 명명했듯 그저 세 번째라는 의미를 지니는 3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단순히 순차적 의미 이상의 것이 포함돼 있다. ‘제3의 무엇’에는 그 앞의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뉘앙스가 있다.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정(正)과 반(反)을 통합·초월하는 합(合)의 개념 같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약점을 극복한 새로운 모델로 제시된 ‘제3의 길’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3의 개념, 곧 기존 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제3의 세력’이 국내외 정치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다소 성급하게 말해 전통적인 양당제, 어쩌면 더 나아가 정당정치의 종언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예사롭지 않은 흐름이다.
국내정치의 ‘안철수 신드롬’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니 놓아두자. 미국과 일본에서도 무능하고 정쟁만 일삼는 기성 (양대) 정당,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제3 세력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양극단 배제, 새로운 정치세력 창조’를 내세운 아메리칸스 일렉트라는 단체가 최초의 비당파적 대통령 후보를 내겠다면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새 정당을 만들지 않고 독자후보만 내겠다는 계획인데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 일본에서는 지역정당 후보가 자민·민주 양대 정당의 공동지원을 받은 후보를 물리치고 오사카 시장에 당선돼 일본 정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지지통신이 각각 여론을 조사한 데 따르면 미국 유권자들의 51%가 공화·민주당 외에 제3의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고, 일본 유권자들은 자민·민주당 지지자가 각 10%대에 그친 반면 무당파는 6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일 3국에서 동시 진행 중인 ‘제3 세력의 반란’이 환멸스런 기성 정치판의 종결자가 되면 좋겠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