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소원을 이루려면
입력 2011-11-28 17:53
마태복음 10장 6∼52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해놓은 것 없이 둘러대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으로 자기 입장에 따라 말을 왜곡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모습이 참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요즘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속뜻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면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이 다름으로 인해 그에 파생된 말과 행동으로 개인과 공동체에 상처와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런 사람의 말을 듣고 옳다고 박수쳐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진실의 의미를 알기보다 형성된 관계와 친분으로 인해 잘못된 것도 옳은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떠야 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리고 여론에 움직이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눈 뜨는 것은 믿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쓰시지만 사단은 신념을 씁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에 있습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첫 번째 키워드는 예수님의 소문을 귀 기울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관심 있는 소리에 따라 행동하게 돼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 소리만 들으면 어깨를 들썩이고 선생님의 강의에 몰두하다 보면 꼼짝 않고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소리에 관심 있느냐는 곧 그 사람의 상태를 나타내게 됩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무리의 법칙이 있듯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친구가 많고 기도하는 사람이면 기도하는 친구들이 많고 열정적이면 열정적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거목은 거목끼리 모여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1년이 지나야 한 개씩 생기기 때문에 거목으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나이테는 시간이 아니라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생겨납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말씀을 듣고 말씀 속에서 해석하고 순종할 때 눈이 떠지는 소원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믿음의 영적 거장이 되는 것 입니다.
또한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는 역사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삶에 나타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알 만한 사람,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디매오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부르짖어 소원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방법의 겉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어제의 겉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자신을 싸매고 보호하고 있는 자존심, 지식, 경험, 체면, 고정관념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벗어버리면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쉬워집니다. 내가 가진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의 옷을 입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좇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이 소원을 이룬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통해 소원을 이루는 간증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표순호 목사(제주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