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인문학] 종교개혁 일등공신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 (上)

입력 2011-11-28 17:55


기독교 개종 후 진리 향한 끊임없는 질문… 주요 교리 토대 닦아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354∼430년)다. 고대 사상가이지만 그를 소개해야 하는 이유는 종교개혁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루터의 칭의 신학이나 칼뱅의 이중 예정론도 그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전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집을 다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까워했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비판도 했지만, 칼뱅의 예정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칼뱅의 예정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복사판이라는 비아냥이 줄곧 따라다녔다. 루터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력은 더욱 결정적이다.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그의 신학은 루터의 유명한 탑의 체험 사건에서 비롯했다.

루터는 ‘탁상담론’에서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한번은 내가 이 탑(비텐베르크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탑) 속에서 이 말씀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롬 1: 17절)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곰곰이 숙고했을 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우리가 의로운 자로서 신앙으로 살고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믿는 사람을 구원으로 이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 영혼은 기운을 다시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에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말들은 내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말이 되었다. 이 탑에서 성령이 성서를 내게 드러내 보이셨다.”

이 탑의 체험은 이후 루터의 신학을 결정지었다. 루터는 이 체험 이후 심판하시고 정죄하고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게 되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시는 엄청난 은총을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된다는 것이 그의 “오직 믿음으로만”의 주장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연상시킨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사 출신인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탑의 체험 이전에 몰랐다면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실 루터는 성령의 도움으로 이런 해석이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디에선가 이런 생각을 아우구스티누스가 먼저 했다고 슬쩍 고백하고 있다.

“그 후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영과 문자에 관하여’를 읽었다. 거기서 나는 기대와는 달리 그 역시 하나님의 의를 비슷하게, 즉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할 때 그것으로 우리를 입히시는 의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같이 아우구스티누스는 루터와 칼뱅 등 종교 개혁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고대 사상가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이야기’ ‘고중세편’에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가 로마의 한 지식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기까지 겪었던 치열한 내면적 싸움을 기록한 ‘고백록’을 읽고 나는 감동한 적이 있었다. 내가 감동한 것은 하나님과 대화하듯 그가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면서 신학적 사상을 전개해 나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도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완전한 존재인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왜 죄를 범하게 되는 겁니까 등 하나님에게 계속 물으면서 진정한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이런 물음과 사색을 통해 도나투스, 펠라기우스 등 이단의 주장을 논박하며 기독교인들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은총론’ ‘예정론’ 등 기독교 교리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를 만들었다.

원래 모든 개혁이나 혁명은 맨 처음의 정신을 회복하고자 할 때가 많다. 이 말은 종교개혁에도 해당한다. 종교개혁은 사실 기독교의 원래 정신이 담겨 있는 성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성서를 읽는다고 해도 잘못 이해하거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성서를 번역한 루터도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해 처음에 그것을 잘못 이해했다고 고백했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성서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서의 원뜻을 가장 잘 해석하는 일과 연관된다. 그렇다면 ‘성서의 발견’ 그리고 ‘성서’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 대해 그 의미를 묻고 깊게 숙고하지 않으면 ‘성령’의 깨달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물음’을 통해 ‘성서’에 담긴 본래의 정신을 가장 잘 일깨워 준 인물이 아닐까 싶다. 사실 물음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물음이 없으면, 불합리한 종교적 관습이나 맹목적 믿음만이 판을 치게 된다.

루터가 성서를 근거로 기존의 부패한 종교 관습과 맹목적 믿음에 95개조의 논박문을 통해 의문을 제기했을 때, 그때 종교혁명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제까지 묻지 않아 왔던 것에 대해 감히 묻는 ‘물음’과 관련이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무조건 믿는다고 해서 묻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오류에 빠뜨릴 수 있고, 독단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항상 올바른 뜻이 어디에 있는가 물어야 한다. 물음을 통해 올바른 믿음으로 나아가고, 믿음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물음의 정신’을 통해 기독교뿐만 아니라 서양 정신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고백록’과 ‘신국론’을 썼다. 이 두 저작 모두 그의 종교적 체험에 바탕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고백록은 그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체험을 담고 있으며, 신국론은 무너져 가는 로마 제국을 바라보면서 기독교인들이 소망해야 하는 국가는 세속적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그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원래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는 이교도인 마니교도이자 출세가도를 달리던 전도유망한 로마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사랑하는 여인과 이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조차 버리고 평생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묻고 사색하기 위해 수도원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가 이런 삶을 선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