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인증설계사도 자문형랩 수수료 인하도… 금감원 금융대책은 ‘헛구호’
입력 2011-11-27 19:06
금융 관련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금융당국이 대책을 내놓지만 공약(空約)에 그치고 있다. 최근 강원도 태백 사건 등으로 보험사기가 문제가 되자 금융감독원은 방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작 3년 전에 도입했던 관련 대책은 까맣게 잊어버린 형국이다.
한동안 자산운용 분야 ‘황태자’로 불린 자문형 랩어카운트의 선취수수료 논란도 마찬가지다. 올해 안으로 수수료를 내리는 등 정비하겠다고 말만 하고는 지금까지 흐지부지된 상태다.
◇우수인증설계사 제도 ‘유명무실’=금감원은 지난 24일 보험설계사가 사기로 의심되는 계약을 맺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보험사기 방지책을 내놨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믿을 만한 보험설계사’를 가려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이미 있다. 금감원과 보험업계는 2008년 공동으로 ‘우수인증설계사(CIC) 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당시 금감원은 “보험설계사들이 맺은 계약건수인 ‘양’으로만 받던 평가를 각 계약의 ‘질’로 평가하는 식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같은 회사에 3년 이상 재직했고, 계약 보험이 1∼2년 이상 유지되는 비율이 높으며 고객 불만으로 제재 받은 사실이 없는 등 요건을 두루 갖춘 경우에 자격을 주기로 했다. ‘CIC’ 로고를 명함 등에 새겨 증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우수인증설계사는 생명보험 분야에 1만3295명, 손해보험 분야에 6143명이다.
문제는 정책 의지 실종으로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같은 회사 3년 이상 재직’ 조항으로 볼 때 3년차부터 수가 늘어야 하는데 손보업계는 올해 인증자가 지난해보다 35%나 줄었다. 소득 기준이 상향 조정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큰 감소 폭이다.
생보업계의 올해 인증 설계사는 1만3200여명으로 2008년 7900여명보다는 늘었지만 여전히 전체(14만9000여명)의 8.8% 수준에 불과하다.
도입 다음 해인 2009년에만 해도 금감원은 분석 자료를 내고 “불완전 판매 방지, 설계사의 직업 안정성 제고 등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자평하면서 “지속적으로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후 보완은커녕 아예 손을 뗐다. 금감원은 “현재는 생보·손보협회가 맡아 관리하고 있으며 금감원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관련 현황조차 취합하고 있지 않았다. 홍보와 교육에 무심한 것은 양 협회도 마찬가지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인증설계사 비중이 낮은 대형회사들이 제도에 소극적이다 보니 감독당국과 협회가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8년 인증을 받은 김연희(38) 설계사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신뢰해 주는 게 유일한 인센티브인데 이마저 없으니 불필요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금융소비자연맹 보험 담당 이기욱 팀장은 “보험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제도인데 이렇게 방치해서야 금융당국에 보험업계 정비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약 없는 ‘수수료’ 인하=금감원은 지난 9월 금융투자협회와 공동으로 ‘금융투자산업의 투자자 보호 및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문형 랩 선취수수료 합리화 방안을 포함시켰다. 고객에게 자산운용 방법을 조언하고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상품 성격에 비춰볼 때 연 1.9∼2.9%의 선취수수료가 과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지난달 24일 금감원은 “올해를 넘기기 전 선취수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면서 자문형 랩을 취급하는 24개 증권사 실무자를 소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증권사들은 “연말까지는 수수료를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증권사만 내년에 0.1∼0.2% 포인트 정도 내릴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각 증권사들에 인하계획을 제출하도록 했지만 체계적이거나 완결된 형태는 아니었다”며 “수수료 범위도 증권사별로 천차만별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자문형 랩은 수수료가 크게 높지 않고, 상품 자체도 인기를 잃는 추세”라면서 “가격 담합 소지가 있어 인하를 재촉하기 조심스럽다”고 소극적인 입장을 전했다.
황세원 이경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