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당한 종로서장 시위현장서 무슨일이?… 네티즌 “정복 입고 가서 자극, 폭행 유발” 주장
입력 2011-11-27 23:29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반대 시위대 속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26일 오후 9시35분쯤이다. 시위대 2만여명(경찰 추산 8000여명)이 해산하지 않자 설득을 위해 직접 나섰다. 당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광화문광장 남쪽 끝에 마련된 국민참여당 선거지원용 트럭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었다.
박 서장은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차도를 통해 정 최고위원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부터 인근 도로까지 가득 메운 시위대를 뚫는 과정에서 소란이 빚어졌다. 시위대 사이에서는 “매국노” “×××” 등 거친 목소리와 욕설이 쏟아졌다. 시위대 중 몇은 박 서장을 조현오 경찰청장으로 오해해 “조현오다 끌어내려”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고 외치며 팔을 휘두르기도 했다. 박 서장을 향한 시위대의 손은 둘러싼 경찰관 10여명에게 막혔다. 일부 시위대는 손이 닿지 않자 경찰 정복 점퍼를 잡아 당겼다. 이 과정에서 박 서장의 좌측 어깨에 있던 계급장이 떨어져 나갔다.
박 서장은 정 최고위원이 있던 트럭을 5븖쯤 남겨두고 결국 시위대의 손에 얼굴을 맞았다. 시위대 서너명이 호위 경찰관 사이로 손을 뻗어 박 서장의 뒤통수와 머리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둘러싼 경찰관들의 제지로 강하게 맞진 않았지만 박 서장의 안경이 벗겨지고 윗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몸싸움이 거세지자 “폭행은 안돼, 때리지는 마”라는 외침이 나왔다.
박 서장은 오후 9시45분쯤 몸싸움이 벌어진 현장을 빠져나와 인근 세종로파출소 교통정보센터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몇몇 시위대가 끝까지 쫓아오자 경찰 6명이 파출소 입구를 막고 문을 걸어 잠갔다. 오후 10시10분쯤 박 서장은 파출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관할 경찰서장이 국회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폭행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박 서장은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경찰서장으로 시위 현장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폭행 사실이 알려지자 시위대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어떤 경우라도 시위 자제를 호소하는 경찰서장을 때린 것은 불법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회사원 박모(28)씨는 “흥분한 상황이었어도 폭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부의 과격한 행동이 시위 전체를 폭력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근무복에 정모까지 착용하고 시위대 사이로 들어온 박 서장의 행동이 폭행을 유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한선범 국장은 “시위할 공간을 열어주지 않고 이동할 통로도 없는데 시위대 사이로 들어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굳이 정복을 입고 시위대 사이로 걸어온 것은 시위대를 자극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박 서장은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자 “약속을 하지 못했더라도 만나지 못할 것 없지 않느냐”며 “경찰이 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정복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묵과할 수 없는 폭력사태에 불법행위 당사자뿐 아니라 주최 측에도 엄중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