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눈먼 돈’… 5년간 1106억 샜다

입력 2011-11-27 23:33

장애 1급인 정모(70·서울 은평)씨는 2001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장애연금으로 매월 37만여원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연금공단의 ‘70세 이상 노령·중증 장애연금 수급자’ 대상 현지 실태 조사 결과 정씨는 2002년 12월에 이미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

가족들이 정씨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신고하지 않은 것이다. 정씨의 아들에게 지급된 ‘유령 연금’은 2003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86개월간 3191만7090원에 달한다. 공단은 의도적으로 사망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 형사고발과 함께 환수 조치에 들어갔지만 아들이 행방불명돼 한푼도 받지 못했다.

배우자 사망으로 2007년 4월부터 월평균 11만8700원의 유족연금을 받은 윤모(75·전남 함평)씨 역시 지난 5월 수급자 실태 조사를 통해 3년 전 베트남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아들과 함께 살다 2008년 4월 사망한 윤씨의 경우 당시 아들이 베트남 경찰과 한국 대사관에 사망 신고를 했지만 처리 과정에서 누락됐다. 윤씨에게는 35개월간 415만6730원의 연금이 잘못 지급됐다.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의 부당수급이 끊이지 않고 있다. 27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금 부당수급은 12만2481건(1106억원)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07년 2만2226건(117억500만원), 2008년 2만7609건(195억7000만원), 2009년 2만8169건(304억400만원)으로 계속 증가하다 현지 실태 조사가 처음 시작된 지난해 2만7315건(300억2900만원)으로 다소 줄었다. 올해도 9월까지 1만7162건(189억2300만원)이 발생했고, 연말까지 2만2000건(250억원)을 웃돌 것으로 공단은 예상하고 있다.

연금 부당수급액에 대한 환수율은 매년 90% 이상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지만 수급자 상황에 따라 미환수 금액이 상당해 ‘새는 구멍’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사전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

공단 관계자는 “부당수급은 대부분 사망, 이혼, 소득이 있는 업무 종사 등 수급권 변동을 늦게 신고하거나 신고하지 않는 경우”라며 “사유 발생 시기와 변동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공적 자료 입수 시점 차이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급자의 자진신고나 공적 자료를 통해서도 수급권 변동을 확인할 수 없는 연금 누수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공단은 지난해부터 중점관리 대상 수급자의 현지 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이를 위한 법적 근거와 전문 조사 인력 등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최근에는 해외 거주자나 외국인의 국민연금 가입이 늘면서 해외 부당수급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