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임술첩’ 첫 공개… 전성기 겸재를 만난다

입력 2011-11-27 18:10


임술년인 1742년(영조 18년) 10월 보름날, 경기도관찰사 홍경보는 경기 동부지역을 순시하다 삭녕(연천)에 있던 우화정(羽化亭)으로 관내 연천현감 신유한과 양천현령 정선을 불러 연강(임진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다. 1082년(임술년) 중국 문인 소동파가 즐겼던 뱃놀이를 흉내 낸 이날 모임을 정선이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 두 점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홍경보의 서문과 신유한의 글 ‘의적벽부(擬赤壁賦)’ 일부, 정선의 발문을 더해 엮은 서화첩이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이다. 3명이 한 첩씩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한 벌만 전해오다 이번에 화첩 원형대로 한 벌이 공개된다.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이 2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여는 조선후기 산수화전 ‘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해서다.

조선후기 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받는 겸재 정선(1676∼1759)이 67세 때 그린 두 작품은 관찰사의 요구에 따라 완성한 기록화이지만 좌우로 긴 풍경에 행사장면과 그 주변 등장인물이나 경물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적절히 살려놓은 명작이다. 뱃놀이를 즐긴 세 사람 중 정선이 소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강임술첩’은 수십년 전 일본에서 들여와 이번에 첫선을 보인다.

지난 3월 조선시대 회화를 대거 선보인 뒤 리모델링한 동산방 화랑은 이번 전시에서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조선후기 회화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문인과 화가 24명의 수묵산수화 50점을 선보인다. 최근 간송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잇따라 열린 조선 회화 전시에 이어 또 하나의 고미술 명작 전시로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7세기의 창강 조속과 연담 김명국에서 시작해 18세기 정선, 반봉 신로, 18∼19세기의 긍재 김득신, 희원 이한철, 성담 김돈희 등의 작품을 통해 조선후기 산수화풍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정선의 ‘춘하추동 산수’는 사계절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고, ‘세검정’은 다소 과장해서 그리기는 했으나 270여년 전과 현재의 세검정 모습을 비교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심사정의 ‘심산운해(深山雲海)’, 표암 강세황의 ‘양류어가(楊柳漁家)’, 서예가였던 김돈희의 그림 ‘임계루옥(林溪樓屋)’ 등은 이번에 처음 전시되는 작품들이다. 복헌 김응환의 ‘방겸재금강전도(倣謙齋金剛全圖)’는 정선의 화풍을 따라 그린 금강산 그림으로 눈길을 끈다. 유춘 이인문의 사계절 산수화도 ‘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취를 전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정선의 ‘연강임술첩’에 대해 “기존에 알려진 작품보다 먹의 농담 변화가 부드럽고 세련된 멋이 풍겨 회화적 가치가 높다”며 “겸재 회화 전성기의 작품으로 해방 후 개인 화랑에서 열린 고서화 전시품 중 최고의 대어급”이라고 평했다. 2대에 걸쳐 40년간 한국화 전시의 맥을 이어온 동산방화랑다운 기획전이다(02-733-5877).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