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이종장기 사업 어디에서 왔나 “돼지 각막→ 원숭이 이식 실험도 괄목할 성과”
입력 2011-11-27 17:40
최근 돼지 췌도세포(인슐린 분비세포)를 당뇨병 원숭이에 이식해 6개월 이상 생존시키는 데 성공한 서울대 의대 박성회 교수팀의 연구성과가 발표되면서 이종(異種)간 장기 이식을 통한 질병 치료 연구에 탄력이 붙고 있다. 원숭이 같은 영장류 이식 실험은 사람에게 적용(임상시험)하기 직전의 최종 동물실험단계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농촌진흥청, 지식경제부 등 4개 부처 산하에 연구단이 구성돼 이식용 바이오 장기 개발 및 연구를 해 오고 있다.
특히 복지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서울대병원 내 소재)은 2004년부터 국내 유수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구자 약 170명이 참여해 돼지 췌도세포와 각막, 심장판막 및 도관(심장의 피 흐름을 조절하는 밸브)을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실험에 매진해 왔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에게 이식시 면역 거부반응 없는 안전한 장기와 이식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종 간 장기 이식 기술이 상용화 될 경우 턱없이 부족한 장기 기증 및 이식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박성회 교수도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과 협동 연구를 통해 돼지 췌도와 원숭이를 제공받아 이식 실험을 진행했다. 현재 서울대병원 내 특수생명자원센터에는 80여마리의 장기 제공용 무균 미니 돼지와 실험용 원숭이 40여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돼지는 장기 크기가 사람과 비슷할 뿐 더러 무균 상태에서 사육 가능하고 다산성이며 값이 저렴한 점 등 때문에 이종 이식용 장기의 제공원으로 국내외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다 자랄 경우 300㎏에 달하는 일반 돼지와 달리 다 자라도 성인 체중과 비슷한 70㎏ 정도가 유지되는 미니 돼지가 장기 이식 연구에 주로 활용된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김상준(서울대 의대 외과 교수) 단장은 27일 “현재 1형 당뇨병 치료용 돼지 췌도와 각막질환 치료를 위한 돼지 각막 이식 실험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당뇨병에 걸린 총 8마리의 원숭이에 돼지 췌도세포를 이식해 이 중 4마리(50%)에서 최장 220일 이상 인슐린 투여없이 정상적인 혈당 조절이 이뤄지는 것을 확인했다. 면역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데 박 교수팀이 자체 개발한 면역조절 항체(MD-3)가 주효했다.
사업단은 2013년쯤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돼지 유래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 방지 등 안전성이 확보돼야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지만 만약 사람 대상 실험에서도 효과가 입증될 경우 당뇨병 환자는 돼지 췌도를 이식받아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도 혈당 걱정없이 살 수 있다.
돼지 각막의 영장류 이식실험에서는 탈세포화된 돼지 각막의 일부분(부분층)을 이식받은 원숭이 5마리 중 4마리(80%)의 각막이 6개월 이상 제기능하는 것을 확인했다. 돼지 각막은 광학적, 물리적 특성이 사람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돼지 각막의 바깥층인 상피세포에는 장기이식시 급성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알파갈(GalT)’ 유전자가 존재한다. 때문에 생리식염수로 이 상피세포를 떼어낸 각막의 부분층을 원숭이 눈에 이식하고 스테로이드 등 면역억제제를 투여하자 면역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업단은 지난달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세계이종이식학회에 이 같은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김 단장은 “돼지 각막의 영장류 이식 실험이 췌도 이식보다 훨씬 성과가 좋게 나타나 사람 대상 임상시험 진입이 더 빠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췌도이식의 경우 임상시험 진입을 위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통용되고 있다. 최소 8마리의 영장류에게 췌도를 이식해 절반 이상에서 6개월 이상 인슐린 분비 등 제 기능을 하면서 혈당 조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각막 이식 분야에는 이 같은 임상시험 지침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김 단장은 “전세계 전문가들이 우리의 앞선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각막이식의 임상시험을 위한 국제 지침 제정을 요청했다. 현재 서울대병원 안과 김미금 교수팀이 제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도 내년까지 ‘형질전환 복제돼지’의 고형 장기(신장, 심장, 간 등)를 이용한 영장류 이식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돼지 췌도나 각막 같은 조직은 이종 이식시 나타나는 면역 거부반응이 비교적 적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때문에 사람 대상 임상 적용이 훨씬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온전한 고형 장기는 훨씬 복잡한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사람에게 이식시 여러 단계의 면역 거부 반응을 없애거나 돼지의 면역 관련 단백질을 인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장기 이식후 수분 내지 수시간 만에 발생하는 초급성, 수일내 발생하는 급성, 수개월후 발생하는 세포성, 수년이 지나 발생하는 만성 면역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도록 관련된 여러개 유전자를 동시에 조작한 ‘형질전환 돼지’의 생산이 필수적이다.
축산과학원은 초급성(GalT), 초급성 및 급성(GalT, MCP), 급성 혈관성(CD73) 면역거부 반응 유발 유전자가 조절된 형질전환 돼지 3종(지노, 믿음이, 소망이)을 차례로 생산한 바 있다. 향후 면역거부반응 단계별로 관여하는 4개 유전자를 동시 제어하는 돼지를 생산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축산과학원 관계자는 “2012년까지 초급성 면역거부반응 유전자 GalT가 완전히 제어된 돼지의 장기를 이용해 영장류 이식 실험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특히 서울대 의대팀이 개발한 면역조절 항체를 활용할 경우 고형장기 이식시 면역거부 반응 억제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