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극 ‘소년이 그랬다’ 연출 남인우 “실험은 청소년기 특권… 무작정 탓하면 곤란”
입력 2011-11-27 17:32
“기존에 청소년극이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명맥을 이은 게 없었어요. 소재주의적 한계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 이 작품을 한 이유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어요. 우리가 과연 청소년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와 청소년의 이야기 외에도 그들과 엮이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말이에요.”
23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을 찾았을 때 ‘소년이 그랬다’ 팀은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분장실로 들어온 남인우(37) 연출은 웃음을 머금고 “제가 머리도 못 감았어요”라고 말했다. 차림새를 가다듬진 않았어도 눈빛만은 초롱초롱했다. 개막을 하루 앞둔 연출가의 긴장감이 이런 것이런가. 분초를 아끼려는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빵과 커피를 먹었다.
“아이들이 할 일없이 어슬렁거리다가 공사장에 이르게 되죠. 아이들의 행동은 장난인데, 잘못하면 범죄가 되는 경계지점에 있어요. 실험이라는 건 청소년기의 특권이죠. 아이들이 부딪치고 실험해볼 기회를 사회가 충분하게 제공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24일 개막한 ‘소년이 그랬다’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내놓은 첫 작품. ‘청소년극’이란 분류 자체가 무의미하게 어린이·청소년극 불모지인 국내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시도다. 작품은 두 소년이 장난삼아 돌을 던진 일이 인명사고로 번진 실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장난과 범죄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서, 사람이 죽었다. 어른들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단하는 역할이다. 2인극인 이 연극에선 소년 역의 두 배우는 형사까지 담당해 각각 1인 2역이다.
“청소년 역이라는 게 흉내만 낸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배우들이 청소년의 생체리듬으로 바꾸는 걸 힘들어하더라고요. 이를테면 평소에 축 늘어져있고 가만히 앉아있는 몸의 리듬이, 수시로 두리번거리면서 ‘짜증나’ ‘심심해’ 라고 말하는 걸로 바뀌는. 이런 게 순식간에 안 되는 거예요. 이걸 깨는 데만 2∼3주가 걸렸죠.”
서른 남짓의 나이로 스무 살도 안 된 소년의 이야기를 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그러나 어른들이 연출하고 연기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청소년극’이라 할 수 있을까. 남 연출에 따르면 국립극단은 이번에 청소년 서포터즈를 모집해 제작 과정에서 이들의 모니터링을 받았다고 한다.
“그 아이들 정말 대박이에요(웃음). 창작과정에서부터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자발적으로 배우들이나 음악팀을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쓰는 용어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자기가 본 게 맞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들한테 정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느꼈는데요, 어른들은 언어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어야 납득하는 게 있어요. 그에 비해 아이들은 뉘앙스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요. 결말이 명확해야 할 것 같다거나, 하고 싶은 말이 뭐냐거나,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따지지 않아요. 그저 받아들이고 느끼는 거죠.”
‘소년이 그랬다’는 호주 극작가 톰 라이코스·스테포 난추 원작으로 김문성과 김정훈이 출연한다. 다음 달 4일까지 국립극단 내 백성희장민호극장. 티켓 가격은 1만5000∼3만원.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