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김어준 대 하루키
입력 2011-11-27 17:43
1988년 일본의 베스트셀러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주인공이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하루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소설의 배경이 된 70년대 전후를 ‘멀미나는 시대’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토로했다.
“지금 이 시대에 서서 그 당시를 생각하면 저는 매우 이상한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그 격렬한 시대를 탄생시킨 변화의 에너지는 도대체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가져온 것인가, 하고. 그 당시에 아주 대단한 큰 일로 생각했던 것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하고.”
2011년 한국의 베스트셀러인 ‘닥치고 정치’에서 김어준은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이 시대를 해석했다. 그는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타고나는 기질과 같은 것이라면서 생존이라는 욕망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두고 설명했다. 우파는 공포를 자극하면서 약육강식의 질서를 역설한다. 좌파는 공포의 평등한 분배와 공동체적 생존을 요청한다. 우파는 자존심, 좌파는 약자를 향한 염치로 각각 정치적 지분을 획득하는데, 대중은 욕망이 이끄는 시대적 필요에 따라 좌파 혹은 우파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김어준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탁월하고 유용하지만, 욕망의 정치학이라는 그의 세계관에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좌파와 우파는 타고나는 것이기에 타협의 여지란 것은 없고, 대중의 욕망이라는 변덕스런 파도에 누가 더 잘 올라탈 것이냐는 문제만 남기 때문이다. 김어준은 자신이 문재인 안철수 아니면 조국(서울대 교수)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 같은 태도를 취한다. 언뜻 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좌파 인물의 강림을 위해 스스로 마키아벨리가 되려는 것 같지만, 결국 그가 영접하려는 메시아는 대중의 욕망인 것 같다.
‘상실의 시대’를 다시 찾아본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소동 때문이었다. 인터넷 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금융 실명제 심지어 온라인 게임 실명제까지 하는 나라에서 정작 나라의 명운이 달렸다는 협정을 비준할 때 국회의원들은 의사당 문을 닫아걸고 인터넷 중계까지 중단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시대는 정체성을 강요당하면서 참된 정체성은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의 한국어판 서문을 읽다 김어준을 떠올렸다. ‘쫄지 마’라는 그의 구호를 쫓느라 우린 또 다시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싸워야 해서 성찰을 잃어버린, 지금은 상실의 시대다.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