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 37년 명예로운 軍 전역사는 “감사, 행복, 희망”

입력 2011-11-27 16:46


2011년 4월 15일 봄이었다. 내가 전역하는 날 아침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시인 엘리엇은 노래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은 자라고/ 추억과 욕망이 뒤엉키고/ 잠든 뿌리는 봄비로 깨어난다.” 그 혹한의 겨울을 견디고 끝끝내 푸른 생명이 움트고야 마는 자연의 강인함을 노래한 것이리라.

37년 군생활을 마감하는 순간, 어찌 회한과 아쉬움이 없겠는가? 늘 했던 것처럼 출근길에 교회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지난 군 생활이 한 편의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사령관님, 후배들의 진출을 위하여 전역해 주시겠습니까?” 나의 전역이 결정되기 며칠 전 육군본부 관계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만일 사령관님께서 용단을 내려 주지 않으면 후배들의 진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겠다. 그 대신 두 가지 희망 사항이 있는데 첫째는 비육사 출신, 둘째는 기독교 신자인 대장이 맥을 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이제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무언가 새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사령관으로서 6개월여를 더 재임할 수도 있는데 18개월 만에 전역하는 것으로 결정되자 혹시 어떤 부정에 연관되어 불명예 퇴진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는 명예로운 퇴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전역사를 준비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모두 포함하기로 하고, 모든 연설에 제목을 붙인 맥아더 장군처럼 나도 우리 군 최초로 제목이 있는 전역사를 한 번 시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감사, 행복, 희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전역사를 쓰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펜을 놓았다. 4월의 봄 밤이 향기롭다. 나의 마음을 아는 듯 달빛도 유난히 밝았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주님, 지난 37년의 군 생활을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당신의 은혜였습니다. 당신은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와 같은 저의 인생을 반짝이는 별로 빛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만 생각하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앞으로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도구로 써 주소서.” 다시 회상에 젖었다. 2년 전 가을 무렵이었다.

“군단장님, 지금 인터넷에 진급과 동시에 2작전사령관으로 발령되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직할대 간부들에게 열심히 교육을 하고 있는 나에게 전속부관이 메모를 전달했다. 나는 메모지를 한눈에 읽어보고 “며칠 전에도 군 인사에 대하여 루머가 있었는데 또 누가 헛소리하냐?”고 코웃음 쳤다. 나는 오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대장 진급에 대하여 나에게 귀띔해 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강의시간 30여 분을 다 채우고 강당을 빠져나왔다. 참모들이 도열하여 박수를 쳤다. 방금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진급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대장이라는 영광은 이렇게 다가왔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들 결혼식이 내일모레인데….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약력=명지대 전자공학과. 동국대 행정대학원(석사). 용인대 명예 행정학 박사. 명지대 경영대학원(박사과정). ROTC 13기 임관. 3군사령부 인사처장, 52보병사단장, 3군사령부 참모장, 8군단장, 2작전사령관. 육군 대장 예편. 한국기독군인연합회(KMCF) 26대 회장 역임. 현 명지대 초빙교수, 용인대 객원교수. 리더십연구소 ‘긍정의 힘’ 대표.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