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경찰 70% “수사 못하겠다”

입력 2011-11-25 21:51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하는 경찰의 집단행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수사 업무를 포기하겠다는 경찰관이 속출하는 가운데 일부는 항의성 집단토론회를 열고 수갑을 반납키로 했다. 경찰의 이 같은 움직임에 치안 공백이 생길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5일 저녁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경찰관 120여명이 충북 청원군 충청풋살체육공원에서 밤샘 토론회를 가졌다. 국무총리실이 강제 조정한 시행령의 문제점을 성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각자 가져온 수갑을 한데 모아 총리실과 법무부에 반납키로 했다. 검찰이 수사권을 다 가져가 수갑이 필요없어졌음을 의미하는 항의성 퍼포먼스다.

총리실 조정안은 경찰이 종결한 내사 사건도 검찰의 사후 통제를 받도록 하고 경찰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내사를 정보수집과 탐문 정도로 제한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지난 6월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인정받은 수사 주체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4일 정오까지 2747명에 달했던 ‘수사 경과(警科) 해제 희망원’ 제출 경찰관은 25일 1만5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10만 경찰 가운데 2만2000여명이 수사경찰인데 이중에서도 70% 정도가 “검찰이 수사권을 가져갔으니 수사 업무를 포기하겠다”고 한 것이다. 서울지역 상당수 경찰서에선 과·팀원 전체가 한꺼번에 포기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포기서가 다 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집단적 항의 표시로 여겨진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수사 경과 반납은 행정절차상 효력이 없는 개인적 의사표현이므로 수리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비(非)수사 부서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마음은 부글부글 끓지만 수사 경과 반납 같은 항의표시를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수사권 조정이 경찰로서는 통탄할 일이지만, 국민 입장에선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문제는 아니다. 때문에 수사 업무 포기와 같은 경찰의 집단행동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범죄를 막고 해결해야 할 경찰이 손을 놓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 월계동에 사는 주부 이모(39)씨는 “경찰이 수사를 안 하려 한다는 뉴스를 봤는데 경찰이 일을 놓으면 치안을 누가 맡느냐”며 “검·경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하모(24·여)씨도 “수사권 조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국민이 안전할 권리, 공정하게 수사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일 텐데 지금은 검·경 권력 싸움만 부각돼 있다”면서 “경찰도 업무를 제대로 보면서 논의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안 재논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총리실 측은 일축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실이 마련한 조정안이 국민 권익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바람직하다. 재조정 필요성이 전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