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파문 확산] “검찰 공화국서 검찰 제국 됐다” 격앙
입력 2011-11-26 00:23
25일 충북 청원군 강내면 석화리 소재 충청풋살체육공원에 열린 ‘일선 경찰 토론회’는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성토하는 전국 일선 경찰관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날 오후 7시쯤부터 모이기 시작한 경찰관들은 조정안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갑을 식당 문 앞에 놓인 책상 위에 하나하나 내려놨다. 이들은 또 자필서명을 하고 도장까지 찍은 수사 경과 해제 희망원을 식당 창문에 다닥다닥 붙이며 의지를 다졌다.
토론장 내부에는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듯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누가 잡나. 더러워서 형사 안 한다’와 ‘검찰공화국 개혁한다더니 검찰제국으로 승격’ 등 정부와 검찰에 대한 불만을 그대로 드러낸 표어들이 나붙었다.
청주 흥덕경찰서 소속 이모씨는 “형사소송법 개정 취지는 경찰의 수사주체성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이번 조정안은 그 취지를 담지 못했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판국이다 보니 착잡한 마음에서 모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경찰관은 “우리 경찰이 무슨 범죄조직이냐. 이렇게 옭아맬 수 있느냐”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오후 8시30분쯤 전국에서 모인 120여명의 경찰관들은 토론회를 열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동조한 국회의원을 내년 총선에서 낙선시키기, 조정안 통과 후 모두 법대로 검사의 지휘를 받는 태업, 가족 등을 동반한 1인 시위와 같은 구체적인 대응책을 쏟아냈다. 이들은 26일 새벽까지 토론한 내용을 경찰 수뇌부에 전달하는 한편 경찰 관련 인사와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청원서 형태로 작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실제로 형사소송법 개정 직전인 지난 6월 24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경찰관 토론회가 열렸고, 이때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청원서는 형소법 시행령을 법무부령에서 대통령령으로 한 단계 승격시키는 데 기여했다.
현직 경찰 간부 중 최대 파벌인 경찰대 출신들은 집단행동에 나서려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경찰대 총동문회 집행부는 오찬 모임을 갖고 논의한 결과 현재 경찰청 수사구조개혁전략기획단이 주도하는 대응 방식을 지지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대 출신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직급인 치안정감 다섯 자리 중 네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총동문회가 움직일 경우 상당한 파급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퇴직 경찰 모임인 재향경우회 회장단은 24일 현직 경찰 수뇌부와 긴급회의를 가진 데 이어 25일 오후 경찰청을 찾아 수사권 조정에 관해 강력히 대응하도록 독려했다. 경우회 회장단은 성명을 통해 “검찰권 견제에서 시작한 사법개혁이 경찰 폄하로 대체돼 150만 경찰인의 명예를 되찾고자 투쟁키로 했다”며 조정안 철폐를 촉구했다.
조정안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도 계속됐다. 한나라당 김정권 사무총장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지난 6월 당시 이귀남 법무장관이 ‘경찰 내사는 수사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면서 “수사 범위를 시행령에서 임의로 확대하는 것은 행정입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원=이종구 기자, 천지우 기자 jgi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