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언어로 그려낸 공동체 삶 풍경… 박성우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
입력 2011-11-25 17:37
“구복리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한천댁과 청동댁이 구복리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구년 뒤, 한천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구복리댁과 청동댁이 한천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중략)// 이 별스런 품앗이는 소쩍새 울음처럼 이어지곤 하는데,// 구복리댁은 울 큰 어매고 청동댁은 내 친구 수열이 어매고/ 한천댁은 울 어매다”(‘어떤 품앗이’ 부분)
한국 서정시의 맥락을 농촌의 질박한 삶에서 발굴해 잇대고 있는 박성우(40·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은 몸으로 직접 체험한 공동체적 삶의 풍경을 곰삭은 시어와 감각적인 묘사로 그려 보인다.
자신의 고향이자 농경문화적 전통이 살아 숨쉬는 전북 정읍을 시적 공간으로 삼고 있는 시인이 그려내는 삶의 풍경은 무척이나 정감 있고 애틋하다. “이팝나무 아래 우체국이 있다/ 빨강 우체통 세우고 우체국을 낸 건 나지만/ 이팝나무 우체국의 주인은 닭이다/ 부리를 쪼아 소인을 찍는 일이며/ 뙤똥뙤똥 편지 배달을 나가는 일이며/ 파닥파닥 한 소식 걷어오는 일이며”(‘이팝나무 우체국’ 부분)
이팝나무 우체국의 우체부는 모두 다섯인데, ‘뙤똥뙤똥’ ‘파닥파닥’하는 의성어는 뜻밖의 생동감을 던져준다. 시인이 그려내는 삶의 풍경은 이렇듯 어른들을 위한 동시처럼 분주하고 메마른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정감과 위안을 가져다준다. 이는 시인의 따스한 시선이 이웃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폭설이다/ 버스는 나흘째 오지 않고/ 자두나무 정류장에 나온 이는 자두나무뿐이다/ 산마을은 발 동동거릴 일 없이 느긋하다// 중략// 아까 낸 눈길조차 금시 지워지는 마당,/ 동치미 국물을 마시다 쓸고 치적거리는/ 라디오를 물리게 듣다가 쓴다 이따금/ 눈보라도 몰려와 한바탕씩 거들고 간다”(‘나흘 폭설’ 부분)
박성우는 폭설이 쌓여도 늘 제 자리를 지키는 마을 앞 자두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 도시적 삶에서 동떨어진 전경에 경도돼 있다는 지적이 없진 않지만 시인은 자신의 성품대로 시를 쓰는 고집을 통해 우리가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삶의 다른 진경을 보여주고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