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만 엄선·번역 ‘파미르…’ 21C 중국詩 흐름 한눈에
입력 2011-11-25 17:37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김태만(51) 교수가 엄선해 번역한 ‘파미르의 밤’(산지니)은 21세기 중국 현대시의 흐름과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보기 드문 시선집이다. 수록 작품은 칭핑(淸平), 황찬란(黃燦然), 양샤오빈(楊小濱), 시촨(西川), 짱띠(臧?), 시뚜(西渡), 쟝타오(姜濤), 쟝하오(蔣浩) 등 중국 문단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 시인 8명의 대표적 시편들이다.
“나의 생명엔 단 두 가지, 바로 출생과 사멸이 있을 뿐이다./ 나는 나를 모욕한 그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태산은 곧 무너질 것이고, 대들보도 곧 무너질 것이고, 철인(哲人)도 곧 죽을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지만, 혀가 늘 이빨을 빼 먹는다.”(칭핑의 ‘공자’ 부분)
칭핑(49)은 중국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에 대한 만가(挽歌)를 부르는 동시에 모든 인간과 사물은 결국 소멸하고 만다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 보인다. 비록 상상을 통해 공자의 말을 전하고 있지만 시 속의 현실감이 결코 현실과 괴리돼 있지 않다. 무거운 문제를 아주 쉽게 풀어 묘사함으로써 무거움을 가볍게 만드는 솜씨가 돋보이는 시이다.
“아내가 고모를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러 간 김에/ 며칠 동안 친정에 머물렀다./ 나보고 딸을 보살피라는 것-그것은 곧 내버려 두라는 말이다./ 딸은 분명 속으로 기뻐했다. 3년 전/ 역시 아내가 며칠 동안 친정에 갔었다./ 즐거움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다.”(황찬란의 ‘아내가 집을 나갔다’ 부분)
황찬란(48)은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구어(口語)의 유연성을 기반으로 시를 쓰고 있으면서도 개인감정을 잘 절제하고 함축한다. 이는 시인 자신이 일상이나 주변에서 세계인의 공통적 감정인 연민을 읽어내고 있기에 가능하다.
시선집엔 1962년생 칭핑에서부터 71년생 쟝하오에 이르기까지 60년 이후 출생한 이른바 ‘류링허우(六零後)’ 시인들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김 교수는 “올 2월 연구년을 맞아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이들 시인과 접촉하면서 자선시 10수씩을 받을 수 있었다”며 “시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