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史는 빚의 역사, 빛 꼭 갚아야 하나 ‘부채 그 첫 5000년’
입력 2011-11-25 17:46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부글북스
1895년 아프리카 빈국 마다가스카르를 침공한 프랑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세금 징수였다. 명목은 도로와 교량 건설이었다. 가난한 마다가스카르 주민들에게 세금 낼 돈 같은 게 있었을 리 없다. 내지 못한 세금은 빚으로 쌓였다. 1960년 마다가스카르는 독립했지만 자유의 대가는 빚이었다. 도덕적 허점은 없었다. 정복과 피정복의 군사관계가 채권과 채무의 경제관계로 치환됐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들이 지난 10년간 중국산 제품으로 벌인 ‘쇼핑축제’는 천문학적 액수의 정부부채로 돌아왔다. 하지만 미국의 빚이 채무인지, 공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세계 곳곳에 무기를 든 미군이 있는 한, 그들의 빚은 갚아야 할 부채가 아니라 안전보장의 대가로 받아들여진다.
빚은 꼭 갚아야 하는가
빚은 변제돼야 마땅하다. 상식이다. 하지만 침략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갚아야 하는 ‘침공비용’이라면 어떤가. 빌려 놓고 큰소리치는 채무자는 약자인가.
빚은 경제적 개념이다. 돈이 필요한 이가 시장이라는 중립적 공간에서 돈을 가진 이에게 돈을 빌리면 비로소 채권·채무 관계가 성립한다. 현대 경제학이 굳게 믿는 ‘부채’의 정의다. 함정은 돈을 주고받는 거래가 중립적일 수 없다는 데 있다. 힘의 역학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하게 경제적 거래로서 부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다가스카르와 미국이 똑같은 채무자일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이런 용감한 결론이 가능해진다. 모든 빚을 돌려줘야 하는 건 아니다. 빌려준 만큼 돌려받는 게 무조건 정의도 아니다.
미국 뉴욕주립대와 시카고대에서 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2007년까지 예일대 교수를 역임한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돈을 매개로 한 채권과 채무의 관계를 경제학으로부터 ‘구출’해 인류학과 역사학의 영역으로 옮겨놓는다. 경제학 대신 인류학의 렌즈를 사용한다는 의미는 이런 거다. 부채를 시장이라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전쟁하고 군림하고 경쟁하는 저잣거리로 끌어내려 빚이 생기고 유통되는 사회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학자가 재해석한 부채는 경제적 거래이자 정치적 경쟁이며, 권력다툼이자 경쟁과 지배, 약탈의 역사였다.
저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해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국 인도를 거쳐 중세 및 근대 유럽, 아마존과 아프리카 원시 부족, 현대 금융시스템까지 인류사를 훑으며 ‘부채야말로 인류 역사를 끌어온 사회적 도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관계는 부채에서 시작하고, 부채를 통해 확장되며, 부채를 선점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그러므로 부채라는 덮개를 벗겨내면, 더욱 적나라한 인간관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폐의 정치학
저자는 화폐의 초창기 역사를 통해 부채의 실체를 밝혔다.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는 화폐탄생 가설은 이런 거다. ‘감자를 가진 A는 구두를 원하고, 구두를 가진 B는 사과를 원한다. 감자와 사과라는 욕망의 불일치는 물물교환의 난제인데, 이건 돈이 해결할 수 있다. A는 돈을 주고 구두를 사고, B는 그 돈으로 사과를 산다.’ 서로 원하는 게 다른 개인의 물물교환을 위해 돈이 생겨났다는 얘기다.
경제학의 주장에 의구심을 품은 인류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물물교환 경제를 찾기 위해 애써왔다. 아프리카와 호주, 아시아 원시부족과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에게서 감자와 장신구, 땔감을 맞교환하는 원시적 형태의 물물교환을 찾는다면, 그건 획기적인 일이 될 터였다. 화폐가 교환의 보조도구로 활용된다면, 증거는 더욱 확실해진다. 화폐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물교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경제학 가설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세기 애덤 스미스 이후, 인류학이 찾은 모든 증거는 정반대 사실을 말한다. 화폐가설은 거짓말이거나 좋게 말해 신화에 불과했다.
인류학자들은 브라질 남비콰라족과 호주 군윙구족, 아프리카 티브족 등 현대 원시부족의 삶을 연구했지만 물물교환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를 찾지 못했다. 부족의 삶을 지탱하는 건 교환이 아니라 부채였다. 부채는 사회적 관계이자 친목이고 부조였다.
그들은 이웃에게 “닭 두 마리를 줄 테니 감자 한 자루를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닭 두 마리를 빌려 달라”고 말했다. 교환이 아니라 빚을 내는 거래였다. 언젠가 이웃이 농기구를 빌려달라고 하면, 농기구로 부채를 상환하게 될 것이다. 이때 닭과 농기구의 교환은 등가가 아니어서 두 이웃간 거래는 언제나 약간의 추가 부채를 남기게 된다. 부채의 릴레이인 것이다. 그렇게 공동체는 부채를 통해 신뢰와 협조 관계를 유지해갔다.
부족경제에서 화폐의 역할은 교환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구애의 상징으로 금속장신구나 가축을 신부값으로 전달하는 것은 ‘신부를 데려오면서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걸 증표로 남기는 행위였다. 살인자가 피해자 가족에게 주는 목숨값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화폐가 물물교환의 매개가 아니라 국가 통치의 수단으로 탄생했다’고 믿는다. 왕은 정복지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통일된 형태의 주화를 만들어냈다. 화폐가 통치자의 ‘발명’이라는 얘기다. “이제 막 도시와 마을을 약탈하고 돌아온 군인들의 손을 통해서” 바빌로니아 여인들의 금은 장신구와 인도의 금불상, 아즈텍의 황금 갑옷은 녹여져 금은 주화로 만들어졌다. 화폐는 시장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학의 도움으로 탄생한 것이다. 정명진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