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33년 독재 무너졌지만 ‘봄날’ 멀었다… 살레 면책특권 보장에 반발 처벌 촉구 시위 확산
입력 2011-11-24 21:45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퇴진안에 서명했지만 예멘에 진짜 봄이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권력공백 속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정국이 전개될 전망이다. 예멘을 대테러전의 교두보로 삼아온 미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혼란 지속될 듯=살레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권력이양안에 서명해 33년 독재가 사실상 종식됐다. 그는 권좌에서 쫓겨난 네 번째 중동 지도자가 됐다. 미국에서 치료받은 뒤 한동안 귀국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멘의 반정부 시위대는 그러나 살레와 그 가족의 면책특권을 보장한 권력이양안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시위대 수천명은 그를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며 수도 사나 중심부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들은 살레가 국내외에 은닉한 재산도 몰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4일 사나에선 살레 지지자로 보이는 괴한들이 반정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5명이 숨지고 34명이 다쳤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 실시까지 90일 동안 압둘 라부 만수르 하디(66)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갖는다. 군 출신 인사로, 1994년 부통령에 임명됐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다. 정국 안정을 이룰 능력과 힘이 있는지 불투명하다.
현재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은 군 장성으로 지난 3월 살레에 등을 돌린 알리 모흐센 알아흐마르다. 그의 부대는 사나 북부를 장악하고 있다. 또 다른 힘은 살레의 아들과 조카에게 실려 있다. 이들도 사나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미 CNN방송은 예멘 전문가를 인용해 두 세력 간 충돌 가능성을 시사했다.
살레를 지지한 부족과 반대한 부족 사이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청년이 중심인 시위대가 무기를 구해 조직화할 경우 그 힘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남부의 분리주의 세력, 북부의 이슬람 시아파 반군, 알카에다 지부도 언제든 정국을 흔들 수 있는 변수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해도 빈곤, 물 부족, 청년실업 등 당면 과제가 수두룩하다. 예멘 경제는 원유 수입 감소로 황폐화된 상태다.
◇미국은 알카에다 영향력 확대 우려=미국은 정국 혼란을 틈 탄 알카에다 등 테러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전 관계자들은 예멘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현재 야당권에 분포돼 있는 과격 이슬람 단체가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예멘은 미국의 대테러 작전의 주요 파트너 국가다. 살레 정권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운영하는 비밀 무인공습기 기지를 제공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예멘에는 미국이 가장 위험한 알카에다 조직으로 꼽고 있는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본부가 있다.
차기 예멘 정권은 살레 정권과 달리 AQAP와의 싸움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일부 이슬람을 중심으로 예멘 내 반미 조직들은 파키스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군의 무인공습기 활동을 반대하고 있다. 이슬람 세력이 이를 활용할 경우 반미 감정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권기석 기자,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