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지옥이 낳은 ‘우등생의 패륜’… “전국 1등” 강요당한 高3, 母 살해 8개월 방치

입력 2011-11-24 21:59

전국 1등을 강요한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신을 8개월이나 집에 방치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학벌 지상주의와 부모·자식 간의 소통 부재가 빚어낸 참극이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신을 방치한 혐의(존속살해 및 사체유기)로 모 고교 3학년 A군(18)을 24일 구속했다. A군은 지난 3월 13일 오전 11시쯤 서울 구의동 다세대주택인 자신의 집에서 부엌에 놓인 흉기로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 B씨(51)의 목을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군은 범행 후 시신과 흉기를 안방에 두고 문을 잠갔으며 시신이 부패해 냄새가 나자 공업용 본드로 문틈을 밀폐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A군은 경찰 조사에서 B씨가 평소 “전국 1등을 해야 한다”, “꼭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며 자주 폭력을 휘둘렀고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안 주거나 잠을 못 자게 했다고 진술했다. A군은 사건 전날에도 자신이 모의고사에서 전국 4000등한 성적을 62등으로 위조한 성적표를 보여줬으나 B씨가 “더 잘하라”는 잔소리와 함께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로 번갈아가며 10시간 동안 체벌했다고 주장했다.

A군은 “어머니가 ‘학부모 방문의 날’인 3월 14일 학교로 오기로 돼 있었는데 모의고사 성적표를 고쳐 놓은 게 들통 나면 무서운 체벌을 받게 될까봐 겁이 났다”고 말했다. A군은 “어머니가 계속 꿈에 나왔다”며 울며 자백하는 등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A군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어머니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컬러 프린터로 성적표를 위조했다. 고교 1학년까지는 학급에서 3등 안에 들 정도로 상위권이었지만 2학년 이후 10등 내외로 떨어졌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채점 결과 3등급 정도의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은 범행 후에도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은 별거 중이던 아버지가 집을 방문하면서 들통 났다. 아버지는 A군이 “어머니가 가출했다”며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점, 안방 문이 본드로 밀폐돼 있는 점 등을 이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A군은 2006년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으며 생계비는 아버지가 보내주는 120만원으로 충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수 경기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부모만의 잘못도 아니고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면서 “암기나 입시 위주로 굳어진 학교 교육이 아이들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