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이 사라진다] ‘피터팬 기업 증후군’ 확산… 中企 졸업 순간 ‘혜택’ 없어져 고의로 규모 축소

입력 2011-11-25 00:43

중견기업이 사라지고 있다. 기업의 성장 단계는 중소-중견-대기업 순으로 진행되지만 성장을 거부하고 중소기업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기업’이 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최근 정부가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중소기업 보호정책은 쏟아내는 반면 중견·대기업 규제는 많다 보니 이런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24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종업원 수 기준으로 분류한 중견기업(종업원 300∼999명)은 국내 전체 기업 중 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이 99.8%를 차지했고 종업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은 0.1%였다. 지난 7월 1일자로 발효된 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중견기업을 중소기업기본법이 정하는 중소기업의 범위에서는 벗어나면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 속하지 않는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피터팬 기업’으로 남으려는 것은 보호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피터팬 기업’은 어른이 됐어도 어린이로 남아있고 싶어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빗대 중견기업으로 가지 않고 중소기업에 머무르려는 기업을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법인세율 차등(대기업 22%, 중소기업 10%), 특별세액 감면(20∼30%), 중소기업 대출의무비율 제도, 공공기관 입찰 우대 등 160여 가지의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이 혜택은 모두 없어지고 공공시장 참여제한, 사업조정 등 50개 법률에서 190개의 규제를 받게 된다.

미국의 중견기업 비율 11.7%, 독일 2.2%, 일본 및 영국 1.4%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0.2%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 생태계가 선진국처럼 ‘피라미드’ 형이 되지 못하고 대다수의 중소기업과 극소수의 중견기업, 대기업이 있는 ‘압정형’ 구조가 됐다. 전경련에 따르면 중소기업 졸업 지점에 있는 기업의 33%가 혜택 유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규모를 축소하거나 유지하고 있다.

1997년 당시 중소기업 중 2007년까지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곳은 119곳에 불과하고,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발전한 기업은 26개, 중소기업 중 대기업으로 큰 기업은 2개사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정책보다는 시장경쟁을 촉진해 기업 스스로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정한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대·중소기업 간 또는 중소기업 간 경쟁을 왜곡시킨다고 판단, 공정 경쟁이 가능한 시장 환경을 만들고 그 바탕에서 중소기업의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