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통과 이후] “15년간 20조원 피해… 양돈농가 30% 폐업할 것”

입력 2011-11-24 22:06


한·미 경제동맹시대… 어떻게 달라지나 ③위기의 농업분야 및 유통시장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이튿날인 23일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농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대책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총리실 주재로 관계부처 회의를 거쳐 다음 주 당정을 열고 FTA 후속 대책을 확정할 방침이다. 정부가 급박하게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농업 피해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방증이다. 농업뿐 아니라 골목시장 같은 영세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에게 한·미 FTA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이 단순 피해 보전에 그치지 말고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농어업 “자생력 키워야”=24일 오후 2000여명의 농민들이 서울 광장에 몰려들어 ‘한·미 FTA 비준동의안 통과 무효’를 외쳤다. 농민들은 지난달 31일 여야가 합의한 13가지 농어업 피해보전 대책(피해보전직불금 지급기준 완화, 밭농업·수산 직불제 신설, 면세유 일몰기간 10년 연장 등)이 일부 차질을 빚을 조짐을 보이면서 거세게 반발했다. 전날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등은 일제히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통과한 11월 22일은 국회가 농축산업에 사형을 선고한 날”이라며 울분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나 여당이 부인하지 못하는 대표적 피해 분야가 농업 분야다. 정부는 한·미 FTA로 향후 15년간 총 12조6600억원이 넘는 수준의 농·축·수산물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폐업 등으로 이어질 경우 농민들이 시설에 투자한 금액 등까지 포함해 피해액이 2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당장 타격이 클 업종은 양돈업계다. 양돈협회는 값싼 미국산 돼지고기가 밀려들면 전국 7200여 양돈 농가 중 30%인 2200개 농가가 폐업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관세 철폐 시점이 다소 늦춰져 있는 과일이나 곡물 등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산 수입량이 늘어나는 데 따른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농어업 분야 피해 대책에 2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상태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농민들 시각이다. 피해보전직불금 등으로 개인에게 직접 지원되는 것은 1조3000억원이고, 그 외 대부분은 농업 분야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시설 현대화나 연구개발(R&D) 지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농업계 불안감을 반영해 피해보전직불금 지급 기준을 더 낮추는 등의 추가 보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부정적 여론을 가라앉히겠다고 ‘돈 퍼주기’를 늘리는 식으로 지원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높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원은 “정부의 지원 방식이 과거 한·칠레 FTA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당시 지원된 금액은 천문학적인 숫자였지만 10년 동안 농어촌의 경쟁력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슈퍼마켓 등 중소 상공인 대책도 시급=유통업계 명암도 크게 갈리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는 관세 인하 등의 효과로 소비가 늘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반면 소상공인들은 보호장치가 더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한·미 FTA 발효로 개방에 가속이 붙을 경우 이미 위축돼 있는 영세 상인들의 몰락을 부추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대표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행 유통법·상생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 소상공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어 걱정스럽고 불안하다”며 “하루빨리 국회에서 소상공인지원법을 통과시키고 실효성 있는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조민영 권지혜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