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인권사안 침묵일관… 할 말 못하는 ‘식물 인권위’

입력 2011-11-24 22:09


국가인권위원회가 25일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인권위는 그간 이라크 파병 반대, 사형제 폐지 등 굵직한 의견을 내 인권보호와 민주질서 확립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현 정부 들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직면하고 있다.

인권위는 1997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설립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인권위를 법무부 산하기구로 두려는 정부안에 인권·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한 결과 2001년 11월 독립기구로 발족했다.

인권위는 2003년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 의견을 냈고 2004∼2005년에는 국가보안법과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입법 권고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인권위는 또 선거권 연령 하향조정 의견과 헌법재판소에 호주제 폐지 의견을 내놓는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인권 의제를 화두로 내밀었다.

인권위에 제기된 사건진정 건수도 매년 늘어나 양적 성장세를 유지했다. 2002년 2790건이었던 진정 건수는 지난해 9168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는 10월 말 기준 616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0% 수준이다.

하지만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전원위)가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 보수인사로 채워지면서 우편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MBC PD수첩 검찰 수사에 대한 인권위 의견 제출안이 부결됐고, 지난해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진정이 기각됐다. 올해 인권위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인권보호 관련 의견 표명을 부결해 인권위 내·외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결국 다수의 인권위 관계자가 현 인권위의 독립성과 조직운영 등을 문제 삼으며 인권위를 떠났다. 지난해 8월 김형완 전 인권정책과장을 비롯해 직원 10여명이 연이어 인권위를 떠났다. 그해 11월엔 문경란, 유남영 두 상임위원이 사퇴했고 이어 조국 비상임위원과 전문·자문·상담 위원 60여명이 집단사퇴했다.

‘독립성 확보’는 인권위의 최우선 과제로 지적됐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조백기 박사는 24일 “견제 수단이 없는데도 대통령에게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4명을 지명할 권한을 주면 독립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과 후보추천위원회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인권위 설립 10주년을 맞아 오는 29일 ‘인권침해구제 10년의 평가’ 토론회 가운데 경찰 분야 토론회가, 다음 달엔 국민 인권의식 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가 열린다. 또 30일엔 인권정책 10년을 평가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