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이 사라진다] 190개 규제 쏟아지고 160여개 정부지원은 ‘뚝’
입력 2011-11-24 22:13
전자부품 제조업체 F사는 올해 중소기업을 졸업하면서 지난해보다 세액공제 혜택을 14억6000만원이나 덜 받게 돼 걱정이 많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042억원으로 매출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을 중견기업이 됐다는 이유로 더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다이아몬드공구 제조업체 A사도 중소기업을 졸업하면서 매년 4억∼5억원가량이던 연구개발(R&D)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의 R&D 지원금 비중은 중소기업이 61%, 대기업은 33%인 데 반해 중견기업은 6%에 불과했다.
◇혜택 없으니 성장 거부=중견기업으로 성장해도 혜택은커녕 규제만 늘다보니 일부 기업들은 중견기업 성장을 거부하고 ‘피터팬’으로 남는 길을 선택한다. 가구업체 퍼시스는 지난해 12월 교육가구 사업부문을 분할해 ‘팀스’를 설립했다. 이종태 퍼시스 회장은 한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정부 조달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을 분할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사무가구와 교육가구를 더하면 공공부문 시장이 절반을 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면 사업을 그만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중소가구업체들은 이미 중소기업을 졸업한 퍼시스의 행태가 다른 중소업체에 타격을 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기업을 업종별로 나눴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기업이 탈법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정부가 올해부터 ‘위장 중소기업’을 솎아내기 위해 관계회사 제도(지배기업이 종속기업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 등을 30% 이상 소유하면서 최다출자자인 경우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하는 것)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은 지난 6월 관계회사 제도에 의거해 897개 기업을 중소기업에서 졸업시켰다. 내년부터는 3년 평균 매출액이 1500억원 이상이거나 자기자본이 500억원 이상이면 기업 규모와 상관 없이 중소기업에서 자동으로 졸업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소외=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서 허리 역할을 할 중견기업이 부족하다 보니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견기업의 입장은 배제되기 일쑤다.
장류로 사업을 키워온 샘표식품의 경우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장류를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선정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날벼락이다. 동반성장위 논리에 따르면 장류 사업을 하면 300명 이상 채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업은 키우려고 하는 것인데 일정 규모 이상 크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어 난감하다”며 “권고사항이라도 해도 분위기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동반성장위는 “중견기업도 함께 논의하고 있고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면서 “샘표식품의 경우 장류로 성장한 점을 고려해 선정과 무관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는 입장이다.
◇중견기업 분류도 어려워=업계에서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종업원 300∼999명의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분류해 왔다. 그러나 지난 7월 1일 산업발전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중소기업기본법에 근거해 중소기업을 졸업한 기업 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을 지칭하게 됐다.
지경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산업발전법을 근거로 중견기업 분류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300만개 이상의 기업이 있는데 업종, 지분 관계 등을 모두 들여다봐야 해서 어려움이 있다”면서 “올해 안에는 중견기업 현황을 파악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중견기업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1300개의 중견기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준엽 권지혜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