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본’ 정진영 “100%를 넘어 101%에 건다”
입력 2011-11-24 18:06
영화 ‘왕의 남자’의 연산군, ‘님은 먼곳에’의 베트남전 위문공연단 밴드 리더 정만, ‘황산벌’과 ‘평양성’의 김유신, ‘이태원 살인사건’의 박대식 검사, TV 드라마 ‘바람의 나라’의 유리왕과 ‘동이’의 서용기 포도청 종사관….
정진영(47)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이같이 독특한 캐릭터로 선 굵은 연기를 보여 온 대표적인 배우다. 그가 이번에는 24일 개봉한 ‘특.수.본’(이하 ‘특수본’·15세 이상)에 조연급으로 출연해 다시 한번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황병국 감독이 연출한 ‘특수본’은 의문의 경찰관 살해사건을 해결할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팀원들이 베일에 가린 범인들에 맞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가는 액션 수사극이다. 동물적 감각을 지닌 열혈 형사 김성범(엄태웅)과 미국 연방수사국(FBI) 연수를 다녀온 냉철한 범죄분석관 김호룡(주원)이 투톱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정진영은 강단 있고 야심 많은 경찰서장 황두수로 열연했다.
영화 개봉에 앞서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진영은 ‘특수본’을 “재미있고, 긴박감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전형적인 장르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2년 전 주연으로 출연한 ‘이태원 살인사건’ 제작사(영화사 수박)와의 인연 때문에 영화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특수본’ 제작사가 ‘이태원 살인사건’을 만든 바로 그 회사에요. 당시 저예산으로 힘들게 영화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신뢰가 쌓였죠. ‘특수본’은 기획하던 초기에 시나리오 모니터링도 해 주곤 했지만 제가 출연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작사가 라인업(출연진)을 다 갖춰놓고 마지막에 황두수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는 “시나리오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신뢰하는 제작사가 마지막 퍼즐을 맞춰 달라고 부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우정출연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황두수 서장은 주요 배역이기는 하지만 등장 장면이 많지 않다. 조연이라 격이 맞지 않을 법도 한데 그는 “많이 나오고 안 나오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 배우로서 주어진 역에 책임을 다할 뿐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촬영 신이 적어 한 달에 한두 번씩 띄엄띄엄 찍다보니 캐릭터를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진영은 요즘 안방극장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지난 14일 첫 방송을 탄 KBS 2TV 월화드라마 ‘브레인’에서 신경외과 의사 이강훈(신하균)의 멘토가 되는 의사 김상철로 출연하고 있다. 그는 “드라마는 계속 피드백(feedback)을 하며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화보다 호흡이 빨라 순발력이 필요한데 영화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8년 연극 ‘탄광’으로 데뷔했으니 연기경력이 올해로 24년째다. 대학 때 연극반 활동을 했고, 사회로 나와서 극단과 영화 연출부 생활을 했지만 연기를 직업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건 30대 중반이 되어서였다고 한다. 98년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약속’에 조직폭력배 행동대장 엄기탁으로 출연한 게 전환점이었다.
그는 “당시 연기를 직업으로 책임감 있게 할 수 있을까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며 “그런데 지금 이렇게 연기를 하며 살고 있다. 그게 아주 신기하고 고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연기관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편하고 쉽게 연기하지 말자’는 게 모토”라고 대답했다. “맡은 역할이 어렵고 불편해야 해요. 연기를 쉽게 한다는 건 내가 갖고 있는 것만큼만 한다는 거죠.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 이전에 해보지 않은 것을 해야 불편해지거든요.” 그는 그래서 연기가 늘 어렵다고 했다.
그는 정상급 배우지만 특이하게도 매니저가 없다. 출연 협의나 스케줄 관리 등 신경 쓸 일이 적지 않을 텐데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제 방식이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지만 저는 이렇게 혼자 하는 게 편해요. 일단 소통에 오류가 없어요. 한 다리만 건너도 오해를 낳는 세상이잖아요. 불편한 점도 있지만 직접 얘기하면 서로의 진의를 확인할 수 있어요. 전 그게 좋아요.”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