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병선 박사가 보여준 애국의 길

입력 2011-11-24 17:51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한 박병선 박사는 해외에서 선구자적 자세로 나라 사랑의 전범을 보여준 학자로 기억된다. 1955년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난 그는 6·25전쟁 후 유학비자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소르본대에서 역사학박사,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종교학박사 학위를 받아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는 국내 대학의 부름도 마다한 채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찾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직지심경과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낸 일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들어간 그는 1967년 소문으로만 나돌던 직지심경을 먼지 구덩이에서 찾아냈고, 치밀한 고증 끝에 1455년판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선 1377년판 금속활자본임을 밝혀냈다. 오늘날 세계 인쇄사에서 한국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직지의 대모’로 불리는 이유다.

직지심경에 이어 1975년 국립도서관 베르사유궁 별관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한 것은 일대 개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간 귀중한 문화재가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로 인해 도서관 비밀누설 혐의로 사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10여년간 개인 자격으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외규장각 도서의 내용을 정리해 반환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같은 노력은 올해 6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받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특별한 애국심을 기리는 것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고인은 평소에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프랑스 노르망디 앞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으나 최근에는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비록 프랑스 국적이긴 해도 고국을 위해 어느 외교관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만큼 한국의 국립묘지로 모셔 후손들의 본보기로 삼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