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출구가 안보인다… 재개발 갈등, 박원순 시장 해법 있나
입력 2011-11-24 17:44
2007년 서울 성동구청 도시관리국장을 비롯한 건설·행정 담당 공무원과 관내 뉴타운 지역 시공사 관계자들이 해외연수를 갔다. 재개발 추진위원회 주민 대표 등도 함께한 연수단은 그해 5, 6, 11월 각각 3박4일 일정으로 세 차례 일본과 중국 재개발 현장을 견학했다.
여행 계획서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 상해의 세기화원아파트 단지 등 12곳과 일본의 도쿄 롯폰기힐스 등 13곳을 방문했다. 송경민 구의원은 그해 12월 6일 의회에서 이호조 당시 성동구청장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재개발 사업은 각종 이권과 연관된 뇌물 매수비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국민들이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입니다. 함께 여행한 삼성물산은 지난 6월 길음 재개발 관련 비리혐의로 본사 압수수색까지 받았습니다. 건설사를 관리·감독해야 할 구청 공무원의 해외 견학은 공무원 복무규정을 넘어선 것으로 부적절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오해할 수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같이 가서 한 방에서 서로 마주 보기 때문에 부조리가 없습니다. 저는 직원 하나하나에게 돈 1원까지 더치페이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왜 뉴타운을 반대하는가
성동구 하왕십리동 뉴타운1구역 주민이었던 이동훈(42·고등학교 교사)씨는 성동구청장을 상대로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씨 등 조합원 4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성동구청장이 각각 인가한 주택조합설립, 사업시행, 관리처분계획이 모두 무효라고 지난해 1월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원심을 뒤집었고,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씨 등이 제기한 소송의 쟁점은 조합설립인가 당시 공사비 등 설계내역이 적혀 있지 않은 ‘공란 동의서’가 작성됐다는 점이다. 조합 측이 주민들에게 건넨 총 803장의 동의서 중 366장이 공란 동의서였다. 조합 설립 최소 기준인 동의율 80%를 겨우 넘긴 조합은 2006년 4월 29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여기서 ‘공란’에 미처 기입되지 않은 공사비 내역 등을 사후에 스탬프로 일괄적으로 찍는 문제를 놓고 투표를 했고 표결 결과 4명은 반대, 58명은 기권했다. 이에 대한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결은 달랐다.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 제5부(부장판사 이진만)는 “피고 성동구청장은 주민 803명 중 644명이 동의서를 제출, 동의율 80.20%에 달한다고 보아 조합설립을 인가했지만 644명 중 59명은 총회 참석도 하지 않았고 위임도 하지 않았다. 또 한 장의 동의서가 누락됐다. 이렇게 보면 유효한 동의서는 최대 584장에 불과하며, 이에 근거한 동의율은 72.72%로 조합 설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부장판사 김창보)는 “비록 조합 설립 동의 당시에는 공란으로 돼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합 측이 총회 이후에 59장의 공란 동의서 작성자들로부터 위임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1심과 다른 판결을 내렸다. 조합설립인가 과정에서 구청은 그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인가를 허가했다.
4명의 원고 중 3명이 소송을 포기했지만, 이씨는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는 등 나홀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시공사로부터 주택 감정평가액을 더 받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일각의 시각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처음 출발은 돈 문제였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고등법원 변론 종결일까지는 (내가) 원하는 만큼 다 주겠다, 2심 판결 나오기 전까진 감정평가액의 2배, 2심에서 지고 나니 1.5배를 더 주겠다 하대요. 그래도 끝까지 갈 겁니다. 억울해서요. 돈이 아닌, 절차와 가치관의 문제라고 봅니다.”
왕십리 1구역은 2007년 10월 24일 관리처분인가 총회를 열었다. 그러나 조합은 총회 당일에도 조합원이 가진 종전 자산(토지와 주택) 감정가를 개인별로 공개하지 않았다. 재개발은 추진위원회 설립,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착공 등의 단계를 거친다. 거의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인가 단계에서도 감정가가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총회가 열리기 약 한 달 전인 그해 9월 27일, 감정평가 회사는 조합에 감정 결과를 통보했었다. 조합 측은 관리처분인가 총회가 의결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개인별 감정평가액을 공개했다.
“조합이 알고도 (개인별 감정평가액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고, 250여명이 싸우자고 모였어요. 물건 사면서 내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 앞으로 살 물건 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재개발이 진행되는 셈이에요.”
그는 조합과 시공사간의 불공정한 계약도 지적했다. 왕십리1구역 조합과 시공사가 작성한 시공도급계약서를 건설교통부가 2000년 6월 만든 시공도급 표준계약서와 비교해 봤다. 표준계약서는 공사비에 포함된 품목이 5% 이상 오를 때만 계약 금액을 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왕십리1구역은 실제 착공일(2008년 11월)보다 지연되면 물가상승률만큼 공사비가 증가하는 구조로 계약돼 있다. 또 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이 폭등할 때도 공사 단가를 재조정키로 시공사와 계약했다.
착공일보다 지연되는 일수만큼 물가상승률분의 공사비가 증가한다면, 공사비 증가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주민들은 재개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실제 왕십리1구역 사업비는 3년 사이에 70% 이상 급증했다. 2006년 12월 조합 설립 인가 때는 3342억원이던 사업비가 2009년 11월 관리처분계획변경 총회 때는 5702억원으로 뛰었다. 사업비 증가율을 따져보니 기타사업비(325.35%), 철거비(184.70%), 신축공사비(18.37%) 순으로 증가했다.
“주민들은 계약서 내용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지도 못해요. 또 다른 차이점은 원가 계산서가 빠졌다는 거예요. 표준계약서에는 아파트 지을 때 지상층, 지하층의 평당 공사비를 나눠서 산정하게 돼 있어요. 당연히 지하층은 주택 대신 주차장이 들어가니까 공사비가 싸죠. 우리 계약서에는 그런 구분조차 없어요.”
대법원 판례를 보면, 사업비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경우 조합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재개발지 아현4구역도 2003년 6월 1463억원에 불과한 공사비가 4년 뒤 2268억원으로 치솟았다. 조합원 김모씨가 아현4구역 조합을 상대로 “주택재개발사업 관리처분계획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며 낸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2009년 9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업비가 대폭 증가할 경우 일정 수준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합장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세입자였던 조합장이 뉴타운 발표일인 2002년 10월 23일보다 불과 이틀 앞서 집을 산 사실이 확인됐어요. 알다시피 세입자는 조합원 자격이 되지 않잖아요. 계약서상에도 공사비를 인상할 때 조합장과 시공사만 협의하면 되도록 돼 있어요. 늦었지만 뉴타운 지역마다 터진 비리를 제대로 조사해서 ‘백서’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재개발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고쳐나가죠.”
뉴타운, 출구를 찾아라
왕십리를 비롯한 서울 곳곳이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서울 뉴타운 지역 주민들이 서울시·구청을 상대로 한 행정 소송만 해도 81건이다.
서울에 재개발 지역이 급격히 확산된 시점은 2002년 뉴타운 발표 때부터다. 2009년 서울시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뉴타운 26개 지구 면적은 1973년∼2008년, 36년간 지정된 서울 재개발 면적(1939만㎡)의 66%(1272만㎡)나 된다. 연평균으로 보면 지난 36년간 재개발지로 지정된 면적의 24배에 달하는 땅이 2002년부터 단 3년 만에 뉴타운 지역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형주택 의무 비율 등의 규제가 완화됐다. 정책자문단은 60㎡ 이하 소형주택 비율도 63%에서 사업 후 30%로 축소돼 오히려 총 공급 주택 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현행 개발 방식으로는 재개발의 거의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인가 직전에 감정평가액과 추가 분담금이 정확하게 추산돼요. 조합은 설립단계부터 현재까지 보통 한 구역당 관리 운영비 등으로 30억∼40억원 썼고, 정비업체와 시공업체 등도 상당한 돈을 투입한 상태예요. 지금은 조합, 재개발 관계자 모두 뉴타운 해제 대신 무조건 앞으로 가야만 손해를 안 보는 구조적 모순을 겪고 있어요. 멈출 수 없는 거죠.”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한동안 뉴타운 지역 인근까지 부동산 투기가 극심했고, 추가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들의 재입주율이 10%대에 불과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울시는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뉴타운은 점차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전 서울시장들과 달리 주택 공공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자 부동산과 주거 정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출구를 찾지 못한 뉴타운을 해제해 달라는 시민들이 시청을 점거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천의 해제 방안을 연구하라고 관계 공무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최근 정비구역 212곳 중 개발 속도가 더딘 28곳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과반수를 넘지 못한 21곳을 해제했다. 이는 ‘재개발 추진위원회 미구성’ 지역에서만 실시된 조사였다. 서울시도 뉴타운 사업구역 241곳 중 재개발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추진위원회 미구성’ 지역 70곳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조합이 결성된 뉴타운 지구 등에 대해선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지난 6월 “뉴타운은 실패한 사업이다.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경기도 또한 상위법과의 충돌을 우려해 모든 뉴타운 지역에서 찬성 여부 투표를 다시 해 달라는 일부 시민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두꺼비 하우징’, 대안인가
주택을 전면 철거해 아파트를 짓는 종전 방식 대신, 노후 주택을 보수하고 마을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의 ‘두꺼비 하우징’ 사업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21일 시범사업 지역인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 일대에서는 장밋빛 희망을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다.
“공짜로 집을 수리해주는 것도 아니고, 두꺼비 하우징 사업단이 제시한 수리 가격도 시장가보다 저렴하지 않아요. 서민은 쫓겨날 수밖에 없는 재개발도 싫고, 저리(低利)로 돈 빌려주겠다는 두꺼비 하우징 사업에도 관심이 없고요. 여기 다들 그래요.” 구멍가게에서 술을 마시던 주민 김모(48)씨는 이렇게 손사래를 쳤다.
보다 중요한 것은 현행 재개발 제도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고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합과 시공사간의 공정한 계약, 조합의 투명성을 보장할 공공기관의 엄격한 감독, 지역 주민에게 어려운 재개발의 법률적 지식을 이해시키는 ‘재개발 학교’ 등도 대안이라고 말한다.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 재개발 사업의 경우 1986년부터 2003년까지 17년간 주민 총회를 무려 1000여회나 개최한 끝에 완성됐다. 서울 면적의 5%를 차지할 만큼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 개발사업은 박원순 시장이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이다. 지금 풀지 않으면 오래도록 서울의 미래를 잠식할 짐이 될 것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