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맞아? 나 정말 맞아?… ‘스타일링 컨설턴트’ 박지현에 패션을 묻다

입력 2011-11-24 18:25


이제훈 기자 ‘도전! 스타일 변신’

어떻게 하면 옷을 잘 입고, 세련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요즘 남자들이 한 번쯤은 해보는 생각이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는 그런 트렌드를 이용해 남성들의 지갑을 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07년 백화점 매출 중 남성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23%였으나 올해는 지난 9월까지 30.2%의 매출을 차지해 처음으로 30%선을 돌파했다. 10월에는 강남점 6층 전체(4800㎡)를 ‘남성전문관’으로 꾸몄다. 남성 화장품 시장도 급성장해 올해 매출 규모는 9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남성들이 멋을 부리기 위한 여러 지출을 감수하는 가운데, 최근엔 20∼40대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세련된 옷차림을 위한 ‘스타일링 컨설팅’을 받는 경우도 생겼다. 남자복식연구소 박지현(31) 소장을 만나 스타일링으로 무엇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여자친구와 아내의 말을 듣지 마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일리스트인 존 몰로이(남성들의 드레스 코드를 처음으로 개념화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만든 인물)는 저서 ‘성공하는 남자들의 옷차림’에서 첫 번째 충고로 “절대 아내가 골라주는 옷을 입지 말라”고 했다. 여자 친구나 아내가 가장 자신을 잘 알고 옆에서 충고해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소장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한국 남자는 세계에서 가장 옷을 못 입는 부류 중 하나일 겁니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파트너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아요. 남편이 배가 나왔다면 이를 커버하기 위한 옷차림을 생각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히려 하거든요. 남자도 여자친구나 아내가 골라주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사준 옷을 입고, 결혼 뒤에는 아내가 골라주는 옷들을 두말 않고 입었던 기자는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스타일링을 해야 하는지, 박 소장에게 좀 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의 눈이 기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날카롭게, 촘촘히 살펴봤다. 기자는 카키 브라운색의 재킷과 청바지, 회색 셔츠, 와인색 조끼를 입고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기자를 ‘스캐닝’한 박 소장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좀 칙칙하네요. 청바지는 오래돼서 물이 다 빠지고 해졌어요. 특히 블레이저(그는 통상 ‘마이’라 불리는 재킷의 정식 명칭이 블레이저라고 알려줬다)는 정말 눈에 거슬리네요. 체형보다 큰 사이즈를 입고 있어요. 헤어스타일도 전형적인 아저씨 스타일인 2대 8 가르마에 안경도 별로에요.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네요. 어디부터 손봐야 할지….”

그가 잠깐 머뭇하다 말을 이어갔다. “기자님만의 문제는 아니고 한국 남자들이 대부분 자신의 옷 사이즈를 몰라요. 자신은 100사이즈가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가서 보면 실제로는 95가 맞는 경우가 더 많아요. 옆에 계신 사진기자분도 블레이저랑 바지가 거의 힙합 수준이에요. 옷 사이즈만 제대로 알고 입어도 훨씬 모양새가 나죠. 옷을 크게 입으면 키가 작아 보이거든요. 키 작은 사람은 옷을 슬림하게 입어야 키가 커 보인답니다.”

그의 충고는 거침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들이 누군 줄 아세요? 이탈리아와 일본 남자들이에요. 일본에서는 남자가 옷을 못 입으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에요. 한국 남자들은 사회생활을 위해 술을 마셔대는데, 일본 남자들은 사회생활을 위해 옷차림에 신경 쓴대요. 한국 남자들 반성해야죠. 특히 기자님은요. 기자는 신뢰도가 생명인 직업이잖아요. 지금 입으신 복장은 별로 신뢰가 안 가는 복장이에요.”

기본만 지켜도 스타일이 달라진다

박 소장과 함께 서울 논현동의 한 캐주얼 매장으로 갔다. 매장의 협조를 얻어 박 소장이 처음으로 고른 것은 기본 스타일. 기본적인 구성을 잘 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응용이 가능해진다.

신뢰감을 주면서도 활동성을 강조한 블레이저와 치노(면바지) 팬츠를 골랐다. 바지의 경우 베이지, 블레이저는 네이비와 그레이가 주된 색상이었다. 셔츠는 화이트나 블루 계통의 버튼다운 셔츠를 추천했다. 구두는 브라운 윙팁(구두 끝에 구멍을 뚫어 장식하거나 재봉으로 W자의 날개 모양을 만든 것)을 기본으로 하려 했으나 적당한 것이 없어 브라운 색 워커로 대신했다.

“기자님은 얼굴 형태가 동그랗고 눈, 코, 입의 인상이 전체적으로 좋아요.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으면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신뢰성이 있어 보이죠. 바지는 무난한 베이지색이 어울리네요. 바지는 슬림한 것을 고르되 끝단이 발목 복사뼈 근처에 걸치도록 길이를 맞추세요. 더 길면 촌스럽게 보입니다. 셔츠 끝 소매가 블레이저 소매 밖으로 대략 1.5㎝ 나오게 하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그 다음은 머리 모양과 안경. 기자는 머리칼이 직모인 줄 알았는데, 박 소장은 곱슬머리라고 했다. 머리 모양도 별로지만 전형적인 한국 남성의 ‘옆머리 일어섬’ 현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가벼운 파마를 할 것을 제안했다.

“그것만은 안 돼요.” 기자가 강력히 저항하자, 박 소장은 파마 제안을 철회했다. 대신 가볍게 손으로 머리를 만져 머리숱이 많아 보이도록 했다. 안경은 뿔테로 바꾸거나 벗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기본 스타일을 완성했다.

다음은 청바지와 그레이 계열의 블레이저, 화이트 셔츠, 목도리를 이용한 조합. 캐주얼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느낌이 났다. 기자가 입고 있던 청바지에 ‘후줄근’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혹평했던 박 소장은 생지 데님 바지를 골랐다. 염색을 한 원단을 제봉만 해서 만들어 물이 덜 빠진 것이 특징이다. “생지 데님 바지는 클래식한 분위기와 캐주얼에 모두 잘 어울리는 소재에요. 바지주름이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세탁은 자주 하지 마세요.” 바지는 약간 작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꽉 끼게 입으라고 박 소장이 권했다.

‘아, 숨 막혀.’

바지 끝단은 한 번 접고, 화이트 버튼다운 셔츠에 그레이 블레이저를 입었다. 여기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목도리로 가볍게 마무리. 캐주얼 매장의 패션 어드바이서 유재숙씨는 기자에게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은 영국 귀족의 사냥복장 스타일이다. 주머니가 옆에 달린 카키색 카우 팬츠와, 어깨 부위에 가죽을 덧댄 베이지색 셔츠, 그레이 계열의 조끼, 여기에 모자를 착용했다. 나이에 비해 부담스런 테마로 옷을 입었지만 젊어 보이면서도 나름 괜찮았다.

스타일링도 배워야 한다

박 소장은 이름 있는 기업에서 인사 파트에 일하며 3년 간 신입사원을 교육했다. 수많은 신입사원들이 옷차림 때문에 고민하고 실수하는 모습을 봤다. 평소 옷차림에 관심이 많아 개인 블로그에 ‘100인 무료 스타일링 서비스’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의외로 네티즌의 성원이 뜨거워 그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국내에서는 희귀한 ‘스타일링 컨설턴트’로 나섰다.

-왜 남자에게 스타일링이 필요한가.

“30∼40대 한국 남자 대부분이 옷을 어떻게 입는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등산바지에 블레이저를 입는 사람도 봤다. 옷차림의 원칙은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춰야 한다.”

-스타일링을 통해 무엇이 바뀌나.

“옷을 제대로 입으면 경쟁력이 높아진다. 자신감이 높아져 대인관계가 좋아지고 업무능력도 향상된다. 세련된 스타일로 이성에게 어필할 수도 있다.”

-백화점 같은 데 가서 비싼 옷만 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난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나 동대문 시장에 잘 가고 고객에게도 권유한다. 어떻게 자기 스타일에 맞게 연출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남자들은 옷을 너무 막 입는다. 예산에 따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꾸는데 최소 30만원은 들 거다. 자기 인생을 바꾸는데 그 정도 돈은 아끼지 마라.”

-컨설팅 받는데 돈을 얼마나 내야 하나.

“대략 50만원 정도다. 비싼가? 컨설팅을 받아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봤다. 38세가 되도록 여자하고 연애 한 번 못해본 노총각이었다. 스타일링을 바꾼 뒤 여자친구가 생기고 자신감도 회복했다. 인생의 대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가가 50만원이라면 적은 거 아닌가.”

박 소장이 시키는 대로 스타일링을 하고 난 뒤 바뀐 모습을 아내에게 사진으로 보여줬다. “이렇게 바뀔 수도 있네! 그런데 파마는 왜 안 했어?”

글=이제훈 기자, 사진=구성찬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