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상’ 첫 수상자 ‘부시맨 닥터’ 이재훈씨 “꿈꾸던 아프리카 의료사역 통해 믿음 연단”
입력 2011-11-23 19:02
교회를 다니던 열세 살 소년은 커서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소년은 의사가 됐고 2006년부터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6년째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지인들에게 ‘부시맨 닥터’로 불리는 외과 전문의 이재훈(44)씨 얘기다. 그는 외교통상부가 수단 남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숨진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이태석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중학생 때 아프리카 선교를 결심한 배경은 단순했다. 이씨는 23일 “혼자 교회를 다니면서 부모님을 전도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잘 안됐다”며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생각했고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를 하면 제 믿음이 증명될 거라 무작정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의술이라는 재능을 여러 사람에게 베푸는 의료 사역으로 아프리카 선교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라며 “마다가스카르를 선택한 이유도 외과 의사가 절실한 곳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설명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외과 전문의는 통틀어 3명밖에 없고 병원 하나 없는 마을이 2만여 곳에 달한다.
이씨는 수도 타나 근처의 이토시 병원에 근무하며 진료가 없는 시간에는 무의촌 의료봉사를 다닌다. 대부분 도로조차 없는 지역이라 경비행기와 헬기까지 동원해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때로는 열대우림을 헤치고 나흘을 걸어들어가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이씨가 치료해준 환자는 지금까지 1만여명에 달한다. 처음 이씨를 무당으로 여기던 주민들도 이제는 진료를 받으러 수십㎞를 걸어온다. 의료시설도 없는 숲이나 들판에서 능숙한 솜씨로 수술을 한다고 해서 ‘부시맨 닥터’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이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씨는 “이태석 신부님의 숭고한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는데 이런 영광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이어 “평소 아무리 시간을 쥐어짜도 1년에 마을 10곳 정도밖에 갈 수 없고 혼자 무의촌을 돌려면 200년이 걸린다”며 “나 같은 의사가 100명만 더 있다면 이곳 사람들도 2년에 한번은 진료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