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국회’ 파문] 민의 없는 ‘폭력의 전당’… ‘필리버스터’ 도입 급부상

입력 2011-11-24 00:13


소화기, 해머, 전기톱, 쇠사슬에 이어 최루탄까지….

화재진압 현장이나 시위 현장, 조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민의의 전당’이라는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도구다. 해마다 폭력 사태로 몸살을 빚어 온 18대 국회에서 이들 물건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급기야 지난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던 본회의장에는 최루탄까지 등장했다.

18대 국회 초반인 2008년 12월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여야의 폭력사태가 처음 벌어졌다. 당시 여야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상임위 상정을 두고 맞붙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의 ‘방해’를 피해 비준동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외통위 본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는 강수를 뒀다. 이에 맞서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은 대형 해머와 전기톱을 동원해 문을 부쉈다. 안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소화기 분말을 뿌려댔다.

이듬해 2009년 7월에는 여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재현됐다.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은 미디어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출입을 막았다. 소파와 집기류 등으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출입문은 쇠사슬 등으로 봉쇄됐다.

2010년 12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본회의장 출입을 놓고 여야 의원과 보좌진 간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을 쫓아가 주먹질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화해했지만 의원 간 대표적 폭력 사건으로 기록되는 오명을 남겼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기다릴 줄 모르는 정치가 국회 폭력을 양산하고, 한번 발생한 폭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정치권이 국회 폭력을 근절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행위) 등을 보장한 ‘국회선진화법’을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도 제도 개선 필요성에 화답했다. 그는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자동상정이나 신속처리 절차를 도입하고 직권상정은 아주 제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속처리 절차는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일정 기간 심사를 완료하지 못하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로 각각 자동 회부하는 제도를 말한다. 황 원내대표는 또 보좌관이 잘못하면 의원에게 책임을 묻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