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추수감사절의 추억
입력 2011-11-23 18:07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해마다 이 절기를 맞으면 유학생활에서 맞았던 미국에서의 첫 번째 추수감사절 기억이 떠오른다. 24년 전 가족들을 한국에 두고 혼자서 유학길에 올랐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도 낯선 곳에서 30대 초반의 나이로 시작한 유학생활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새벽까지 읽고 또 읽어도 쌓여만 가는 과제들, 잘 들리지 않는 수업내용에 눈치껏 적응해 보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어려운 첫 학기를 보내는 한복판에 추수감사 절기를 맞았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처럼 국가적 절기이기 때문에 모든 기숙사가 텅 비고 기숙사 식당도 문을 닫는 기간이다. 한마디로 갈 곳 없는 유학생들은 컵라면을 방에 쌓아두고 일주일 내내 라면으로 끼니를 연명해야 하는 서러운 기간이기도 하다.
추수감사절 아침 빈 기숙사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기에 내려가 보니 내 지도교수인 애쉬브룩 박사가 사모님과 함께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홀로 기숙사에 남아있을 것 같아 왔단다. 나는 그분 집에 납치되듯 초대되어 가 생애 잊지 못할 감사절을 지냈다. 칠면조 구이와 많은 추수감사절 음식 가운데 가장 반가웠던 음식은 특별히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김치와 불고기였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을 대접하기 위해 한 시간씩 운전을 하고 나가 한국 식품점에서 특별 준비했다는 그 음식을 먹으며 가슴 뭉클한 ‘환대(Hospitality)’의 사랑을 느꼈다. 아직도 그때 맛본 칠면조 고기와 신 김치 맛의 환상적 어울림은 어느 특등 식당의 메뉴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막힌 음식 맛이라 기억한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초기 미국 이주자들이 경험한 ‘환대’의 체험에 있다. 미국이란 신천지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첫발을 내디딘 유럽에서 온 이주자들을 토착민이었던 인디언들이 칠면조와 옥수수를 내주어 굶어죽지 않게 도와주고 농사법을 일러주어 다음해에 자립할 수 있도록 환대를 베풀어주었다. 고마운 이웃, 생존에 필요했던 필수적 타인이었던 인디언들을 그 다음해에 이주자들이 초대하며 고마움을 감사로 표현한 데서 유래한다. 그들의 생존을 도와준 환대에 대한 감사를 또 다른 환대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감사와 나눔의 축제, 추수감사절.
우리는 작고 외로운 인간들이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들이 이 땅에 오는 순간부터 엄청난 환대를 체험하며 생은 자란다. 부모로부터의 환대가 바로 그것이고 성장하며 경험하는 모든 만남의 신비들이 바로 이 세상 속에 숨겨 놓은 창조주의 우주적 환대이다. 이 환대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체험한 자만이 다른 생명들에 대하여 환대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의 한 공간을 타인을 위하여 비워놓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감사는 환대를 체험한 자들이 자발적 몸짓으로 보여주는 마음 비움의 표현이며 우주의 환대에 응답하는 삶의 축제이며 생의 열정이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주변에는 이 우주적 환대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경쟁과 피해의 강박증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웃을 향하여 잔치를 베풀지 못하고, 잔치를 벌일 수 없는 사람들은 변비 걸린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자신 안에만 가두어 두려 한다. 경쟁적이고 강박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통제하려든다. 이런 사람들은 우주적 환대의 에너지를 자기 안에만 가두어 둠으로서 자신과 타인을 분리시키고 이 분리를 아름답게 미화시켜 지속시키려고 제도화한다.
예수의 삶은 우주적 환대를 나누는 축제의 삶이었다. 이 땅의 외로운 나그네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즐겼던 예수는 마지막 식탁에서조차 자신의 삶을 인류를 위해 먹히는 빵과 포도주로 승화시켰다. 감사와 나눔을 통해 자기가 유일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일러주신 것이다.
■ 정석환 교수는 이야기심리학을 통해 보는 성인 발달과 목회상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