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교회-경북 예천 공군 예천기지교회] 늦가을 교회당 창공… ‘떴다 떴다 비행기’

입력 2011-11-23 18:37


가을이 저물어간다. 어쩐지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다.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시리다. 이럴 때의 여행지로는 좀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 좋다. 그런 점에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고 도는 경북 예천은 늦가을의 여행지로 맞춤하다. 둥그스름한 산세 사이로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물길이 참 편안하다.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라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에서 아련한 향수를 일으킬 만하다. 예천에는 회룡포를 비롯해 유명한 곳이 제법 많다. 공군기지, 정확히 말해 제16전투비행단도 그중 하나다. 그 속에 교회가 있다. 부대 내 군인과 그 가족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짐에도 교회 안에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피어오르고 있다.

“쌕∼ 쌕∼”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새파란 하늘 속으로 솟구쳐 오른다. 공군 비행장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예천군 유천면 연천리의 제16전투비행단.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채 소총을 든 두 병사의 굳은 표정이 잠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간단한 출입 절차를 거치고 얼룩무늬 제복을 입은 정훈 장교의 안내를 따라 부대 안으로 들어간다.

철조망을 칭칭 감아 올려놓은 높다란 담벽을 따라 만들어진 포장길로 얼마간 갔을까, 산뜻한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십자가를 음각으로 새겨놓은 전면의 출입문 위에 ‘공군 예천기지교회’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유리벽으로 된 교회 모습은 깔끔하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문을 들어서자 서너 명의 병사가 왼쪽 군종병실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현관에 나와 있던 최영훈 목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왼쪽 대예배실에서는 찬양 소리가 교회당을 울린다. 여전도회가 특송 준비를 하고 있단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데 멀리서 오셨네요.” 지긋한 나이의 세 사람이 환하게 인사를 건넨다. 교회 한상식 신임기 장로와 김성도 안수집사다. “교회당이 좋죠?” 한 장로의 짧은 말이 방문객의 느낌을 대변해준다.

군부대 교회라는 선입견을 버린다면 일반 교회와 거의 다름이 없다. 사무실과 목양실, 성가대실, 카페에다 아동부실, 유치부실, 학생부실, 자모실, 방송실 등 그야말로 구색을 다 갖추었다. 2층에 마련된 중보기도실, 개인기도실 등이 민간 교회보다 더 기도에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준다. 아니나 다를까, 최 목사가 “외로움이나 조직 내 갈등을 겪기 쉬운 군인들이기에 기도의 능력을 더 강조한다”고 말해준다.

군선교의 최일선 현장

예천기지교회의 교인은 150여명이다. 군인과 군인 가족이 절반씩 차지한다. 공군의 경우 육군에 비해 군인 가족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군대 교회이면서 민간 교회의 성격이 많이 가미됐다는 뜻이다. 본당 입구에 있는 주보를 들고 찬찬히 훑어보니 역시 그런 것 같다. 주일예배를 비롯해 새벽예배, 유치부·아동부·학생부예배, 구역예배, 성경공부모임 등 예배와 모임이 민간의 여느 교회와 거의 같다. 화요신우예배, 수요조종학생예배 등이 좀 색다르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곳곳에 민간 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당회가 없는 대신 운영위원회가 있다는 것이다. 목사와 장로뿐 아니라 안수집사, 권사 등 직분자와 부서장, 여전도회장, 성가대장 등이 두루 운영위에 참여해 교회 운영을 통할한다.

또 하나, 민간 교회에는 없는 신우회가 있다는 것이다. 사병들 위주로 운영되는 신우회는 예천기지교회 사역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70여명이 모여 드리는 예배를 비롯한 다양한 신우회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여전도회는 신우회 활동의 섬김이 겸 도우미 역할을 한다. 예배당 옆 식당 겸 교육관에 신우회를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신우회 예배에는 가끔 유명 강사나 복음성가 가수를 초청되기도 한다. 최 목사는 “사병들의 신앙관리뿐 아니라 군 복무 중 처음 복음을 접한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신앙인으로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예천기지교회는 군선교의 최일선이다. 군선교라는 추상명사가 피부에 닿게 느껴지는 실감의 현장이다. 군인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거룩한 현장이다. 군인들에게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고 전하는 전도의 현장이다.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온갖 악습들과 싸움을 벌이는 전투지이기도 하다.

“구호나 행사 위주의 군선교보다는 실제로 단 한 병사의 영혼이라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옆에서 혼잣말처럼 한마디를 던진다. 뼈가 있는 말인 것 같다. ‘전도의 황금어장’이라는 등 거창한 수식 아래 진행되는 한국교회의 군선교가 현장 상황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친다.

지난해 새 성전 입당

예천기지교회는 제16전투비행단과 역사를 같이한다. 1976년 비행단이 창설될 때 초대 류재열 목사의 부임으로 교회도 함께 문을 연 것. 이후 지금까지 35년째 명맥을 이어오면서 지난해 최 목사가 22대 담임목회자로 왔으니 평균 1.5년에 한 번씩 목회자가 바뀐 꼴이다. 군부대 교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야 어떻게 나름의 특성을 살리고 비전을 설계할 수 있을까 싶다.

어쨌든 예천기지교회의 2010년은 의미 깊은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새로운 교회당을 마련하게 된 것. 30년 넘게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온 예전의 교회당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인근에 부지를 마련해 지금의 쾌적하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짓게 됐다.

예천기지교회가 하는 일은 부대 안팎에서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뤄진다. 전입 신병을 대상으로 하는 환영캠프, 관심병사 상담에서부터 수시로 위문활동을 하며 훈련 시엔 야외 특별예배를 드린다. 또 기독교 지도자 초청행사, 인근 민간 교회와의 친선체육대회, 고등비행과정 수료 감사예배, 월 1회 성찬예식 등도 중요한 행사다.

아름다운 꿈과 사연

솔직히 처음 예천기지교회를 찾을 때 군대 교회에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교회를 찬찬히 둘러보니 곳곳에 나름의 사연들이 숨어 있다. 군인과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피어내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예천기지교회 앞에는 유난히 많은 상록수가 심어져 있다. 점점 앙상해지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여전히 짙은 초록 잎을 굳건히 매달고 있다. 부대 안을 두루 둘러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보안상’ 아쉬운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다. 대신 머릿속으로 풍경을 그려보면서 부대를 나선다.

아쉬움을 안고 담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따라 부대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본다. 한참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 이상으로 광활한 공간이다. 예천기지교회에서 많은 느낌을 얻었지만 그중 하나가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군 교회와 민간교회 간의 교류가 예상보다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풍기 성내교회 등과 체육 교류를 하고 있지만 미흡한 것 같았다. 군 교회는 재정 등 여러 면에서 민간 교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곳이 아닌가.

● 한반도 최고 물돌이 마을 ‘회룡포 절경’

서울에서 예천기지교회를 갈 때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여주휴게소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가다 점촌·함창IC로 빠져나가는 게 좋다. IC에서 오른쪽 문경시내를 통과해 20㎞ 정도를 가다 보면 제16전투비행단 팻말이 보인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점촌행 버스를 타고 점촌에서 공군부대 가는 버스를 바꿔 타면 된다.

제16전투비행단 주변에는 가볼 만한 곳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역시 전국적으로 알려진 회룡포를 놓칠 수 없다. 제16전투비행단에서 용궁면 방면으로 나와서 팻말을 따라 가면 된다. 회룡포는 한반도 최고의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 상류인 내성천이 작은 마을 하나를 휘감아 돌면서 흘러 육지 속의 섬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회룡포를 조망하려면 비룡산 위로 난 가파른 길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장안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시 400m 정도 계단길을 오르면 회룡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평일인데도 회룡포의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이 많다. 강줄기를 찬찬히 살펴보면 마을을 빙 돌다 360도 중 10도 정도를 남기고 다시 흘러가는 형국이 신기하다.

‘섬 속’ 마을로 들어가려면 회룡대를 내려와 백사장을 지나 ‘뿅뿅다리’를 건너면 된다. 구멍이 뿅뿅 뚫린 공사용 철판을 이어 붙여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예전에 죄인들의 귀양처였고,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 고종 때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해 의성포라 불리기도 한단다.

회룡포를 본 다음 예천읍 쪽으로 방향을 잡아 초간정으로 향하는 것도 괜찮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 바위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가 제법 운치 있다. 정자에 걸터앉자 계곡의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글을 읽고 썼을 옛날 선비들의 유유자적한 삶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시간이 되면 감천면의 석송령, 용문면의 금당실마을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수령 600년 넘는 석송령은 자기 재산을 갖고 세금을 낸다는 소나무다. 금당실마을은 조선시대의 돌담길과 고택들이 잘 보존돼 있다. 나오는 길에는 용궁역에 들러도 좋다. 문학작품들에 흔히 나오는 간이역사와 달리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지만 역무원조차도 없는 작은 역이다. 용궁면의 순대국밥은 꽤 유명하다. 구수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예천=글 정수익 선임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