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교통신] 영적 르네상스가 필요한 유럽

입력 2011-11-23 17:55


1991년 여름 수백 명의 유럽인들이 강원도 고성을 찾았다. 17차 세계잼버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위험한 분단국가인 줄로만 알았던 남한까지 목숨 걸고(?) 날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서 긴장의 그늘이 사라지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국의 산하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특히 이들이 가장 인상깊은 한국의 이미지로 꼽은 것은 설악산, 부산의 자갈치 시장, DMZ의 삼엄한 분위기 등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그들에겐 낯선 일상의 파편들이었다. 그리고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역동적인 한국교회의 모습 역시 이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비쳐졌다.

예수전도단의 찬양책 2권과 낡은 통기타 하나 들고 야영장을 찾은 나는 서툰 솜씨로나마 영어가사로 된 찬양을 부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여기저기 텐트 속에서 기어나온 친구들이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다가 어느새 라이브 콘서트를 하게 된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열흘간 우정을 나누던 그들이 한국을 떠나며 내게 남긴 말들 중 하나가 내 인생에 반향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유럽선교에의 방향성을 잃지 않게 하고 있다. “네가 부르는 노래 속에 어떤 생명력이 느껴졌는데 그게 뭔지 알고싶어.” 예수를 높이는 찬양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의 손길이 그들의 마음을 만진 것이리라.

1995년 여름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제18차 세계잼버리대회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기독교 문명의 외형과 문화는 있으되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는 희박한 유럽의 실상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발상지였던 그곳엔 오히려 진정한 신앙고백과 그에 합당한 삶이 희귀하고 예수는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는 연약한 아기 아니면 십자가에 달린 나약한 존재로 성당벽화에나 갇혀 있었다. 유럽이야말로 영적 르네상스(Renaissance)가 필요한 선교의 불모지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도 이때 120여일간 홀로 떠난 비전트립의 결과였다.

1999년 가을 유럽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로 출장을 간 길에 장 칼뱅(Jean Calvin), 마르틴 부처(Martin Butcher) 등 종교개혁자들이 세운 교회들이 텅 빈 박제처럼 남아있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사실상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 대다수인 유럽인들에게 그들의 문화와 역사의 일부인 예수가 삶의 전부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할 수 있을까? 진리의 빛으로 중세의 암흑을 가른 개혁자들이 번역한 성경을 대량으로 찍어내고 유통시킨 스트라스부르야말로 유럽 재선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때 즈음의 일이었다.

2004년 봄. 무역과 여행 부문에서 유럽의 영적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키는 선교의 채널이 되겠다는 비전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아주 작지만 조금씩 그 열매가 맺힐 조짐이 보이고 있다. 생전 신앙고백을 할 것 같지 않던 벨기에의 친구로부터 “하나님께 기도를 해보았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유일한 선택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가 박제화된 문화 속의 예수가 아닌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만지심에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청난 경제적 침체로 신음하는 유럽의 회복은 진정한 영적 르네상스와 함께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서태원(유로코트레이드앤트래블 대표·서울 이문동 동안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