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꺾기와 역꺾기
입력 2011-11-23 17:34
금융기관이 대출해주면서 강제로 금융상품에 가입토록 하는 것이 꺾기다. 자금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았던 시절 ‘갑’인 금융기관이 압박하면 ‘을’인 기업과 개인은 꺾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에는 금융기관이 대출금의 일정 부분을 떼고, 금융상품까지 끼워 팔았다. 예컨대 500만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450만원을 빌려주고, 200만원짜리 적금에 들게 하는 식이다. 물론 고객은 원금 500만원과 그에 해당하는 이자를 갚아야 한다. 차액 50만원은 금융기관이 지점의 활동자금 등으로 꿀꺽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감히 따질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꺾기는 대출금리를 편법으로 올려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었다. 문제가 불거지면 감독기관이 실태조사를 하고 적발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기관경고, 책임자 문책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근절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금융기관의 변종 꺾기까지 등장했다. 1억원이 필요한 기업에 2억원을 빌려주고 1억원짜리 예금에 들게 하는 ‘100% 꺾기’, 금융기관이 현금 대신 양도성예금증서(CD)를 주면 기업이 유통시장에서 CD를 싸게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CD 꺾기’도 나왔다. 90년대 초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5개 시중은행의 꺾기 비율이 51.9%에 달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만큼 꺾기가 만연했다.
최근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꺾기와 ‘역꺾기’가 공존한다. 2005년 163억원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지난해 29조1472억원으로 커졌다. 5년 동안 1788배 증가한 것이다. 이 시장에서도 금융기관은 중소기업 위에 군림한다. 대출 받는 조건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종용한다. 하지만 임직원이 많은 대기업 앞에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대기업이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자사 상품 구입을 금융기관에 강요하는 실정이다. 역꺾기로 되치기를 당하는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금융기관의 고질적 관행인 꺾기를 근절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금까지는 꺾기를 자행한 직원에게 최고 5000만원의 과태료를 물렸지만, 앞으로는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꺾기 관행이 남아 있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래도록 지속된 꺾기가 이번에는 사라질 수 있을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