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입력 2011-11-23 17:25


고린도전서 15장 31절

신앙인으로 옛사람을 버리는 그 순간은 고통스럽습니다. 내 것을 내려놓는 순간은 힘듭니다. 하지만 주께서 내 안에 사심으로 인해 얻어지는 평안과 자유는 그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죽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내려놓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훈련은 매일 하는 것이고 반복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무엇을 죽여야 할까요?

먼저 욕심을 죽여야 합니다. 욕심은 죄를 낳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욕심은 비교할 때 생깁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은혜로 받지 않고 다른 것, 다른 사람을 보면서 비교할 때 욕심이 나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욕심이 나지 않습니다. 욕심은 허영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남에게 보이기만 하는 거짓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 혈기를 죽여야 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일수록 혈기를 잘 내고 실수를 잘하는 편입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 혈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칼을 빼어서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우리가 죽여야 할 두 번째는 혈기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을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혈기가 앞서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하려고 할 때 먼저 혈기를 죽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한번 더 돌아보면서 인내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울러 교만을 죽여야 합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렘 13:15)고 성경은 말합니다. 교만은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내 생각과 경험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좋은 것인지는 알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살아가면서 습득된 인생의 노하우를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또 생각의 한계를 죽여야 합니다. 아는 것만 아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 안에서 모든 것이 진리입니다. 경험주의입니다. 내가 모르면 다 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의 단계에서 우리는 죽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행동의 영역에서 우리의 육신을 제어하고 인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각 자체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제한하는 그러한 틀을 깨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에 가둬지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생각의 틀 안에 주님을 가두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죽으며 삽시다. 교만을 죽입시다. 혈기를 죽입시다. 욕심을 죽입시다. 생각의 틀을 죽입시다. 그리고 이 죽임으로 인해 생기는 염려와 부족함을 주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흔들리지 않고 지켜지는 평강의 축복을 더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죽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재성 목사(뉴저지 안디옥 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