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3분내에 연극의 세계로 데려가야”… 日 연극계 거장 니나가와 첫 방한

입력 2011-11-22 19:05

“저는 원본을 그대로 공연하는 것보다 더 충실한 작품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거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싸우는 노인’이라고 생각하지요.”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일본 연극계의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76)는 “나는 일본을 대표하는 연출가가 아니라 일본의 일부를 대표하는 연출가”라고 했다.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니나가와는 1969년 연출 데뷔한 이래 셰익스피어 연출로 정평이 난 연출가다. 이번에 한국에 들고 온 신작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그로선 24번째 셰익스피어 연출작이기도 하다. 니나가와는 그러나 “일본에선 저를 싫어하는 비평가가 많다”며 “유럽식 방식에 충실한 연극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저는 배우들에게 유럽식 연기를 흉내 내지 말라. 우리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 우리들의 발성을 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리딩 연습을 하지 않고 바로 동선으로 들어가기도 하지요. 유럽 연극은 보통 테이블에 앉아서 희곡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저는 그런 건 학자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내 작품이 유럽에 가서 ‘새롭다,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자 (자신을 비판한 평론가들에게) ‘이제는 알겠느냐’는 감정이 들기도 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3분 이내에 (관객을) 연극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 연극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극이란 일반인들이 얼마나 무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를 연출가 입장에서 인식하는 작업입니다. 어두워지는 속도, 밝아지는 속도, 무대가 밝아졌을 때 관객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 등을 (작품이 시작한 지) 3분 안에 보여주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3분’은 말하자면 연극의 성패를 가르는 니나가와만의 기준이다.

“저희 세대는 유럽 연극을 이상적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럽 연극을 단순히 긍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아시아의 정체성과 연결시킬 수 있는지 생각했어요. 유럽에서 날아온 씨앗을 어떻게 꽃피워서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이게 (셰익스피어에 대한) 많은 해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극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재일교포 3세 배우 아란 케이에 대해선 “패기 있고 아름답고 존경하는 배우”라고 설명했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24∼2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